세 얼간이 - 3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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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엎치락덮치락 이야기가 격동하고 반전을 거듭하면서 미친 듯이 이야기가 내달린다면? 동시에 주인공들이 결혼식장에서 도망치고, 미워하다가 사랑하고, 죽었다가 깨어나고, 싸우다가 화해하고, 포악했다가 인자해지는 변신을 거듭한다면?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50부작 대하드라마가 아닌 ‘딸랑’ 120분짜리 드라마에서 펼쳐진다면 어떨까? 여기까지만 듣고 그 드라마를 평가해보라고 한다면 백이면 백 모두 ‘막장 드라마’라고 말할 것이다. 앞서 말한 사례들은 모두 ‘세 얼간이’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이렇듯 ‘막장’의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다. 하지만 내가 극장에서 목격한 관객들은 모두 한 발짝 뒤로 물러서 비판하기보다는 그저 영화와 함께 뒹굴며 웃는데 더 열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낯설고 거칠며 산만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 영화가 왜 이런 설명하기 힘든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일단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영화는 인도의 한 공과대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배우들이 우리말만 잘 구사할 수 있다면, 카이스트 혹은 한국의 대학으로 배경을 바꾼다고 하더라도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학점과 취업의 노예가 되어 진짜 ‘공부’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대학생들, 그리고 학생이 아니라 ‘기계’가 되도록 강요하는 사회구조와 교육시스템. 이것은 비단 인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도 목도하고 있는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사회이슈화 되었던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과 카이스트 총장님의 경쟁지향의 학사운영방식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례들과 묘하게 겹쳐지면서 이 이야기가 남의 뒷담화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한다. 이야기의 거칠고 성김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동시에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매우 낯선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은 우리나라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할리우드와 우리나라 주류의 영화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서사방식을 취한다. 이야기의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노래와 춤과 우스꽝스러운 행동들은 심각한 주제에 힘을 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저 낯섬과 독특함을 즐기면서 웃다가 보면 금새 영화 안으로 빠져들고 만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의 화려함이나 대스타의 연기에서 풍기는 아우라는 없지만 소극장의 연극에서 느낄 수 있는 소박하고 뜨거운 열정과 활기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이야기의 뻔한 전개와 너무 급격한 흐름에 날선 비판의 칼끝을 세우다가도 낄낄거리고 훌쩍거리다보면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즈음에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대학총장 비루(보만 이라니)가 란초(아미르 칸)에게 펜을 건네주는 장면일 것이다. 경쟁과 효율 위주의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옹호하는 비루가 비판적인 란초를 인정하는 동시에 란초에게 ‘너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토로하는 장면은 인간과 인간, 제도와 제도 간의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두 방식 모두 각각의 유용함이 있다. 공부의 지난함과 암기의 늪을 건넌 후에야 학문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반대로 학문이 즐겁지 않다면 공부의 지난함과 암기의 늪을 건널 인내와 힘을 얻을 수 없다. 암기냐 창의냐, 경쟁이냐 방임이냐. 전혀 다른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독초가 약이 되기도 하고 홍삼이 독이 되기도 한다. 적당한 것을 적절한 시기에 쓰는 것이 명의다. 우리 교육에는 이런 대화와 소통이 불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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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얼간이 - 3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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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거칠고 산만하지만 독특한 서사와 메시지의 힘이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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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병기 활 - War of the Arr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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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운 스토리를 커버하는 감독의 영리함, 배우들의 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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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1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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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에 통달했다는 말은 거기서 배운 지식을 자기 목소리로 바꾸어서 말할 수 있느냐가 기준이다. 수십 번을 읽고 ‘이제 다 알았다!’고 느껴도 누군가 거기에 대해서 질문할 때 버벅거리며 추상적인 답변을 거듭한다면 다 안 것이 아니다. 무엇에 대해 다 안 사람은 다르다. 기존의 학설을 자기 기준으로 재배열하고 자기 목소리를 섞어서 막힘없이 말한다. 그런 사람에게 비로소 ‘일가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윤기는 서양 문화의 한 축인 헬레니즘에 대해서 통달한 사람이다. 그야말로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 그의 유작인 이 영웅열전에서도 이윤기만의 목소리가 가미되고 중국고사와 우리 신화까지 종횡무진하면서 대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미완성’ 유작이다. 원래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한 일간신문에 연재되었던 것들이라고 한다. 생전에 이윤기는 이 원고를 기반으로 해서 그리스로마의 인물들을 되짚어보려고 시도했던 모양이다. 1권에 담긴 테세우스, 알렉산드로스, 뤼쿠르고스, 솔론에 대한 글들에서는 그 노력과 정성이 느껴진다. 초고를 보완해서 짜임새 있는 완결된 글들로 다듬었고, 사진과 그림도 보강되었다. 역시 명불허전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 때문인지 2권은 미완성의 초고로만 남아 있다. 글은 신문 연재 당시의 그대로 인 듯 짧고 깊이도 한계가 있다. 탈레스와 디오게네스를 다루는 장은 1권에서 솔론과 알렉산드로스의 장에서 이미 나왔던 이야기들의 반복이다. 그리고 한니발과 스키피오, 카이사르를 다루는 장은 걸출한 인물에 대한 서술치고는 너무 짧다. 1권에서 대가의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2권에서는 대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의 부재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슬프다.

  나오는 말을 읽다보면 이윤기가 계획했던 저작물들의 조감도를 엿볼 수 있다. 몇 세기를 주름잡았던 서양문화의 근간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둘러보고 ‘오래된 미래’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방향을 보여주고자 했던 거대한 계획을 말이다. 하지만 그 웅장한 조감도의 기초공사만 완성한 채로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저 아쉬울 뿐이다. 부디 그가 남긴 대공사를 누군가 마무리해서 우리의 지적 열망을 채워줄 수 있기를 바란다. 1권과 2권의 사뭇 다른 느낌, 그 모두가 고인의 마지막 유작으로서 넘치면 넘치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충분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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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2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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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물상지(玩物喪志). 특정한 물건을 지나치게 사랑하면 큰 뜻이 상한다는 뜻이다. 애완물만 그런 것이 아니다. 특정한 관념도 그렇고 특정한 습관도 그렇다. -24쪽

"운이 좋았을 뿐이오. 그만한 일 하지 않은 정치 지도자가 어디 있소?" // "하지만 아크로폴리스에 신전을 세우신 그 드물게 훌륭한 업적에 대한 칭송만은 받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명사들의 말에 페리클레스가 그리스 특유의 수사법으로 응수했다. // "아직 나 때문에 상복을 입게 된 아테나이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하는 말이오." // 죽기 전에는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는 뜻이다. (페리클레스가 병석에서 명사들의 칭송을 물리치며 한 말 중에서)-34쪽

‘퓌로스의 승리’는 진 것이나 다름없는 승리를 일컫는 말로 인구에 회자된다.-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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