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1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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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에 통달했다는 말은 거기서 배운 지식을 자기 목소리로 바꾸어서 말할 수 있느냐가 기준이다. 수십 번을 읽고 ‘이제 다 알았다!’고 느껴도 누군가 거기에 대해서 질문할 때 버벅거리며 추상적인 답변을 거듭한다면 다 안 것이 아니다. 무엇에 대해 다 안 사람은 다르다. 기존의 학설을 자기 기준으로 재배열하고 자기 목소리를 섞어서 막힘없이 말한다. 그런 사람에게 비로소 ‘일가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윤기는 서양 문화의 한 축인 헬레니즘에 대해서 통달한 사람이다. 그야말로 일가를 이룬 사람이다. 그의 유작인 이 영웅열전에서도 이윤기만의 목소리가 가미되고 중국고사와 우리 신화까지 종횡무진하면서 대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의 ‘미완성’ 유작이다. 원래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한 일간신문에 연재되었던 것들이라고 한다. 생전에 이윤기는 이 원고를 기반으로 해서 그리스로마의 인물들을 되짚어보려고 시도했던 모양이다. 1권에 담긴 테세우스, 알렉산드로스, 뤼쿠르고스, 솔론에 대한 글들에서는 그 노력과 정성이 느껴진다. 초고를 보완해서 짜임새 있는 완결된 글들로 다듬었고, 사진과 그림도 보강되었다. 역시 명불허전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 때문인지 2권은 미완성의 초고로만 남아 있다. 글은 신문 연재 당시의 그대로 인 듯 짧고 깊이도 한계가 있다. 탈레스와 디오게네스를 다루는 장은 1권에서 솔론과 알렉산드로스의 장에서 이미 나왔던 이야기들의 반복이다. 그리고 한니발과 스키피오, 카이사르를 다루는 장은 걸출한 인물에 대한 서술치고는 너무 짧다. 1권에서 대가의 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면, 2권에서는 대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의 부재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슬프다.

  나오는 말을 읽다보면 이윤기가 계획했던 저작물들의 조감도를 엿볼 수 있다. 몇 세기를 주름잡았던 서양문화의 근간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을 둘러보고 ‘오래된 미래’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방향을 보여주고자 했던 거대한 계획을 말이다. 하지만 그 웅장한 조감도의 기초공사만 완성한 채로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저 아쉬울 뿐이다. 부디 그가 남긴 대공사를 누군가 마무리해서 우리의 지적 열망을 채워줄 수 있기를 바란다. 1권과 2권의 사뭇 다른 느낌, 그 모두가 고인의 마지막 유작으로서 넘치면 넘치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충분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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