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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ㅣ 코너스톤 세계문학 컬렉션 2
조지 오웰 지음, 박유진 옮김, 박경서 / 코너스톤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1984. 이것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년도가 아니다. 그것은 러시아의 작가 예브게니 쟈마틴의 <우리들>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이어 20세기 3대 디스토피아 문학 작품으로 일컫어지는 조지 오웰의 <1984>를 뜻한다. 백과사전에
'Orwellian'
또는 'Orwellism'이라는 용어가 등록될 정도로 해당 작품은 문학사를 넘어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기
전에 먼저 만나본 디스토피아 문학은 바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였다. 1932년에 출간된 작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21세기 현대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기계 문명의 발달과 과학의 진보로 인해 발현되는 현대 사회의 모순들과 획일화되어가는
인간상에 대한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기계 문명과 과학의 진보로 인한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감정들을 배제한 채 단지 환락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인간상을
그려내고 있다면 조지 오웰의 <1984>는 '빅 브라더'로 대표되는 거대 권력에 의한 이성과 본능이 억압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조지 오웰은 이미 <동물
농장>을 통해 전체주의적 절대 권력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낸 바 있다. 사회주의 이념에 따른 러시아 혁명과 그 뒤 이어진 스탈린의
독재를 우화를 통해 정치적 풍자와 함께 비난했다. 그런 그가 사회주의 체제의 오세아니아를 배경으로 <동물 농장>에서 미처 다하지 못
했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1984>는 전체주의로 물들여진 사회의 표면적 또는 잠재적인 위험성을 사실적이고 디테일하게 묘사하며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상경찰, 텔레스크린, 증오의 시간, 신어 등이 바로 그러한 요소들이다.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비슷한 면을 찾을 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오래전에 쓰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계화된 문명, 최첨단을 달리는 과학의 진보, 인간으로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평등이 억압당한 채 권력에 의해 통제되어가는 모습들은 그동안 우리가 익히 봐온 모습들이 이기에 전혀 낯설지가 않다. 인간
존엄성에 대한 상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두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디스토피아적
사회의 모습은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바로 <이퀄리브리엄>이라는 영화다. 21세기 현대 과학 문명이
빚어낸 세계. 3차 대전 직 후 살아남은 이들은 인간의 이성과 본능을 위험 요소로 분류하고 통제하기 시작한다. 모든 인간의 감정을 배제하고 질서
정연하게 통제된 이성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새롭게 만들어진 사회에 속한 인간의 모습은 총사령관이라 불리는 '절대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 이후 영화는 본디 인간이 지니고 있던 이성과 본능을 되찾기 위해 절대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하고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에 국가 권력에
의한 민간 사찰이나 도청, 감청이 크게 이슈화가 되어 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는 개인의 자유가 철저하게 파괴된 사례이며 인권
문제로까지 확산되기도 한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현실 속 이러한 사례들은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보여준 빅 브라더에
의한 통제 시스템을 떠오르게 한다. 어쩌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바로 소설 속 디스토피아가 아닐까 싶다. 일부 권력을 가진 자들만이
누리는 자유가 진정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유토피아의 탈을 쓴 디스토피아의 현대 사회의 모습을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하는 존엄성은 이 땅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일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