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낼모레 마흔, 남자친구의 배신, 가족의 파산 소식. 생각만 해도 절망적이다.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한 이 사람 앞에 과연 무엇이 남아 있을까.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심정일 것이다. 그 무엇도 지금의 심정을 달래줄 수 없을 것만 같다. 끝이라는 위험한 생각과 동시에 행동에 옮기려 들지도 모르겠다. 그때 누군가 내 옆을 지켜주며 헌신적인 조언을 준다면 어떨까. 그동안의 아픔을 딛고 일어날 수 있을까. 전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가능하다. 만약 불가능했다면 이 세상에 남아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조언자가 사람이 아닌 동물이라면 어떨까. 판타지 같은 일이 소설 속에서 벌어졌다.

올해 나이 39. 낼모레면 마흔이다. 그녀의 이름은 사라 레온. 스페인에 있는 가족을 뒤로하고 잘생긴 남자친구와 함께 런던에 온 지 벌써 10년째다. 어릴 적 서점을 하시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언론학을 전공했지만 현재 그녀의 직업은 광고 디자이너다. 부족할 것 없이 완벽해 보이는 그녀의 삶에 돌연 이상 신호가 감지된다. 회사의 중요한 프레젠테이션 발표 날에 지각을 한 것도 모자라 서두르다 그만 지하철에 발표 자료가 들어있는 노트북을 놓고 내린다. 결국, 클라이언트를 앞에 두고 그만 실신한 채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것이 그녀에게 닥칠 시련의 시작이었을까. 결혼만 안 했을 뿐 부부와 다름없었던 남자친구에게 배신을 당한다. 자신을 속인 채 2년 전부터 회사 여직원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설상가상, 스페인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파산 소식을 전해 듣는다. 시련은 하나씩 차례로 찾아오는 법이 없다. 한꺼번에 찾아온 시련에 충격을 받은 사라는 무의식적으로 나쁜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바로 그때, 얼마 전부터 그녀 주위를 맴돌던 고양이로 인해 정신을 차린다. 그 고양이는 다름 아닌 자신을 입양한 말하는 고양이 '시빌'이다.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꿈을 꾸고 있는 걸까? 고양이가 말을 하다니.. 고양이가 인생 멘토가 된다니 말이다. '시빌'과 함께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그녀, 과연 잃어버렸던 삶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까?

예로부터 고양이는 신비하고 영롱함을 지닌 동물로 여겨졌다. 꼭 고양이가 아니더라도 우리 인간에게 동물은 너무나 친숙한 존재다.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때로는 친구처럼 그리고 가족처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존재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동물들이 바로 그런 존재다. 작가는 아마도 그 점에 주목하지 않았나 싶다. 늘 조용히 옆에 있어주며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존재로 말이다. 마치 내 인생의 멘토처럼.


인생은 매 순간 다시 태어나고 있어. 태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항상 새롭게 말이야. 먹을 땐 먹는 데 집중하고, 걸을 땐 걷는 데 집중해.

거듭된 시련에 슬퍼하고 있는 주인공 사라에게 불쑥 나타난 도둑고양이 한 마리. "왜 온 건데?"하고 묻는 사라에게 그녀는 말한다. "왜라니? 널 입양하러 왔지." 지금껏 입양이라는 말은 사람의 입장에서만 사용되어 온 게 아닌가 싶다. '아이를 입양하다', '애완견을 입양하다' 등 모든 행위의 주체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정반대다. 고양이가 사람을 입양한다. 입양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고양이 '시빌'은 입양 대상자인 사라를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지금껏 살면서 잊어버렸던 기본적인 삶을 대하는 감각을 일깨워 준다. 점차 사라는 잃어버렸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과 인생에서 내려놓는 방법을 배워 나간다. 그리고 행복을 찾는다.


네 주변의 모든 것을 인식해봐. 매 순간을 충만하게 살도록 해. 네가 사는 매 순간이 바로 너의 순간, 너의 시간, 너의 인생이니까. 네 인생은 회사의 것이 아니야. 네 인생은 네 거라고. 다른 사람한테 네 인생을 뺏기지 마.

사라가 시련을 극복하고 새롭게 변화된 어느 시점부터 더 이상 시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처음부터 말하는 고양이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슬픔을 이겨내고자 하는 사라의 바람이 고양이에게 목소리를 준 것은 아니었을까. 그 목소리는 결국 사라가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내면의 목소리는 아니었을까. 살면서 누구나 사라와 같은 힘든 일을 겪게 마련이다.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면 사라처럼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일어설 수 있게 하는 것은 오직 그 목소리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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