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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평점 :
진실 혹은 거짓. 일요일 아침마다 우리를 미스터리 한 세계로 빠져들게 했던 예능 프로였다. 실제 사건을 진실과 거짓으로 재구성하여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과연 어느 것이 맞는지 추리해보는 시간이었다. 늦잠자고 싶어지는 일요일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높았다. 그저 킬링 타임용 재미있는 예능 프로였기 때문일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해당 프로를 좋아했던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았을까. 그것은 오직 한 번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우리의 삶에 또 다른 선택 즉, 플랜 B가 있을 수도 있다고 가정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나도 몰랐던 내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 이런 것이라면 대략 맞을 듯하다. 그런데, 예능 프로에서처럼 만들어진 거짓 삶뿐만 아니라 우리의 진실된 삶조차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 어떨까.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 세계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이라면 말이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과연 진실인가 아니면 거짓인가.
이 사회에 태어난 생명에겐 반드시 주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회보장번호 즉, 주민등록번호다. 그것은 그 사람이 속한 사회 속에서 그를 식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것이다. 하지만, 특이하게 그것을 갖고 있는 않은 일란성 쌍둥이 자매가 존재한다. 그런데 오늘부로 그 존재는 둘이 아닌 하나가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D이며 정신과 의사였던 실종된 그의 쌍둥이 언니를 찾고 있다. 눈을 떠보니 이곳은 병원이며 어릴 적 기억을 제외하고 성인이 된 후의 15년간의 기억이 통째로 날려간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X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한 과정에서 만난 Y와 B로 인해 자신이 영화에서 보고 말로만 듣던 스파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후의 삶도 그와 같기를 종용 받는다. 하지만, 믿기 힘든 진실 앞에 의문의 싹은 커져간다. 이 사회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언니를 대신하여 정신과 의사 노릇을 하게 된 그녀 D와 기억을 잃어버린 채 이 사회를 조종하는 스파이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할 그 X가 만나게 된다. 그들의 만남은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의해 설계된 것이었을까. 그게 무엇이었든 간에 그로 인해 D와 X 그리고 Y, B는 자의와 타의로 인해 진실을 쫓아가게 된다.
제6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 <고요한 밤의 눈>은 우리에게 삶의 진의 여부를 묻는 듯하다. 그러는 한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과연 진실한지 묻고 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두 작품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는 그 실체를 본 적은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거대한 존재인 빅 브라더에 의해 유지되는 디스토피아 사회의 모습을 그린 조지 오웰의 <1984>다. 다른 하나는 기계가 만들어낸 가상의 현실 속에 살아가는 인간이 진실의 눈을 떠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매트릭스>다. 전자는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이 사회를 조작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스파이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고 후자는 스파이들에 의해 감시당하고 조작된 삶을 살아가는 정체성 잃어버린 무기력한 존재인 대부분의 사람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소설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게 한다. 인생의 3분의 1을 살아온 나는 내 의지대로 살아온 것일까. 나는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살아갈 것인가. 나는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단지 잘 짜인 시스템에 의해 나 자신도 모르게 프로그래밍되어 살아온 것은 아닌가. 물론, 시스템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사소한 버그들은 끊임없이 생겨났고 고쳐졌다. 현재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 삶도 고쳐지고 다듬어져 온 것은 아닐까. 사회라는 시스템을 벗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다. 그렇다면 그 시스템에 길들여지는 것은 필연이 아닐까. 아니, 필요악이 아닐까. 이토록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로서의 깨달음에 절망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종국엔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 패배하지 않기보다는 무엇이든 해서 패배하겠다'. 충격적인 깨달음에 이은 대반전이다. 시스템에 편입되어 무기력한 존재로 살아가기보단 무엇이 되었든 간에 시도해보자고 말한다. 그 노력이 비록 더 비참한 삶으로 이어진다 할지라도 그 삶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언제까지 후회하면서 시간을 보낼 것인가. "슬퍼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란 어디에도 없지만 슬퍼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이제 끝내야만 한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망설이지 말고 이제는 한발 내디딜 차례가 다가온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