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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덕의 눈물 -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우수상 수상작 ㅣ 시공 청소년 문학
정해왕 지음 / 시공사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 전통음악 중에 '소리'라 일컬어지는 음악이 있다. 이는 다른 음악과 달리 그 안에 이야기를 품고 있다. 물론, 이야기가 빠진 음악이야 존재할 수도 존재해서도 아니 되겠지만 '소리'는 조금 남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이유는 그 안에 '한'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그 옛날 한민족의 역사가 그러했고 민중들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즉, '소리'엔 우리 민족의 한과 얼이 살아 숨 쉬는 음악인 것이다. 그렇기에 '소리'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소리를 통해 나오는 이야기는 바로 내 삶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에 가장 애절한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한다면 단연코 <심청가>를 들 수 있겠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소소한 웃음거리와 익살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슬픈 비장함이 깔려 있다. <심청가>는 작가 미상의 한국 고전 소설인 <심청전>의 내용을 소리로 만든 것이다. <심청전>을 모르는 이가 과연 한국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만큼 책으로, 소리로 오랫동안 읽혀온 작품이며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작품이 지닌 감동을 선사한다.
최근의 추세는 고전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움직임이 많은 듯하다. 음악, 소설,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방면으로 선보이고 있다. 고전이라 함은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작품을 일컫는 것이지만 현대인들에겐 다소 낯선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의미일 텐데 고전의 재해석은 이런 측면에서 새롭다. 많은 이들에게 고전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거니와 작품을 다른 시각에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며 원작을 한층 더 재미있게 해준다. 이 작품 <뺑덕의 눈물> 또한 그런 의미에서 높이사야 할 소설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2010년 개봉한 영화 <방자전> 또한 고전의 재해석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심청전>과 쌍두마차 격인 고전 작품으로 <춘향전>을 들 수 있다. 우리가 다 아는 <춘향전>의 주인공은 단연 이몽룡과 성춘향이다.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가 주 내용이다. 그런데 영화 <방자전>은 여태 지켜온 <춘향전>의 불문율을 깨트려버린다. 영화의 제목에서처럼 영화의 주인공은 성춘향도 이몽룡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조연에 불과하다. 이 이야기는 원작에서 눈에 띄지 않던 몽룡의 몸종인 방자의 시선으로 화자 된다. 이 얼마나 파격적이란 말인가. 우리가 알던 춘향과 몽룡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가 훼손될 것에 염려되어 눈살이 찌푸려지는가. 영화 <방자전>은 그 나름대로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를 갖고 있다. 아니, 영화를 본 개인적인 소감은 <춘향전>은 원래 <방자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뺑덕의 눈물>을 접했을 때 영화 <방자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설 <뺑덕의 눈물>은 눈먼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인상 수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날 인당수에 빠진 심청을 구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든 뺑덕의 이야기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바다에 뛰어든 그날부터 뺑덕의 사랑을 오직 심청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심청은 효녀 중에 효녀다. 하지만, 효녀라는 타이틀은 결국 제삼자인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은 아닐까. 눈먼 아버지를 봉양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마다않던 심청의 본심도 과연 그러했을까.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그녀의 효심은 이 소설의 본 모습을 드러낸다. '난 효녀 아냐. 그냥 나쁜 년이지'라고 고백하는 그녀가 진짜 심청의 모습은 아닐까. 충격적이면서도 한편으론 공감되는 그녀의 진심 어린 고백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심봉사와 뺑덕어멈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결국 심청을 이성으로 사랑했던 뺑덕의 마음은 남매 간의 사랑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의 효심 못지않은 애절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사랑해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남매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어느 소리꾼에 의해 이야기가 있는 음악으로 재탄생한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심청가>다.
영화 <방자전>만큼이나 재미있고 새롭다. 이 소설 또한 영화로 제작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뺑덕과 심청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결말을 미리 짐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심 해피엔딩을 바래보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해피엔딩이었으면 지금의 애절한 판소리 <심청가>는 탄생할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하니 이 또한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저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도리가 없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다음엔 두 사람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행복한 결말이 되는 또 다른 작품이 나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