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의 도시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3
문지혁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뉴욕 맨해튼. 누구나 그곳에서의 화려한 삶을 꿈꾼다. 동경의 대상. 꿈의 도시. 잠들지 않는 도시. 유혹의 도시. 하지만, 고향땅을 떠나 그곳에 정착한 이들에겐 그저 낯선 도시에 불과하다. 꿈과 희망 그리고 화려함은 그곳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사라진다. 남은 것은 그저 살아내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 절박하다. 무료하다. 치열하다. 서로 다른 희망을 품고서 뉴욕을 찾아온 4명의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자신에게 성공이란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라 믿는 '지웅'. 한국에서 대학원에 다니던 중 소개팅으로 만난 그녀와 결혼 후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처음의 부푼 기대와 달리 유학생활은 고달프다. 그날도 어김없이 박사 과정 강의에 열중하고 있던 그에게 전화가 한통 걸려온다. 아내 '미혜'다. 웬만해선 강의 중 연락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무슨 일일까. 휴대폰을 통해 그녀의 날카로운 음성과 흐느낌이 전해진다. 센트럴파크를 조깅하던 중 히스패닉 청년들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한다. 충격에 빠진 아내를 달랠 틈도 없이 대뜸 범인을 잡으려 아내를 추궁한다. 그렇게 유학생 부부에게 큰 사건이 일어나고 두 사람은 평소와 다른 밤을 보낸다. 그간 공부에 시간을 뺏겨 곁에 있는 아내의 외로움을 달래주지 못 했다. 다음날 강의를 듣는 둥 마는 둥 집으로 온 '지웅'은 이내 집안에 아내가 없음을 알아챈다. 그녀가 사라졌다. 낯선 뉴욕에서 그녀가 갈 만한 곳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아내의 책상을 살펴보던 중 여행책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발견하고 연속해서 발견되는 의문의 글자 'P'에 주목한다. 문득 그녀가 다니던 교회 이름이 Pathfinder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교회에 연락을 한다. 교회 담당 목사인 '희광'은 '지웅'에게 만날 것을 제안한다. '희광'은 '지웅'에게 교회 청년 '평화'와 그의 아내 '미혜'가 특별한 관계라는 소문이 떠돈다고 말한다. '지웅'은 아내의 실종과 '평화'라는 청년이 관계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를 추격하기 시작하는데..

화려한 젊음의 도시, 뉴욕 맨해튼. 이곳을 배경으로 멀리 타국에서 온 이들의 숙명과도 같은 낯선 이야기가 얽히고설킨다. 작가는 이 소설의 창작 배경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통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중략) 고통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관계적이기도 합니다. 촘촘하게 이어진 고통의 연결고리,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지는 고통의 이어달리기를 소설의 형태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에 등장하는 네 명의 등장인물의 고통은 연속적이다. 마치 그들은 같은 운명의 수레바퀴에 놓인 생쥐처럼 앞사람의 고통의 끝자락을 붙잡고 자신의 고통을 이어간다. 그리고 다음 사람에게 전달한다. 사라진 아내를 찾아 나서는 남편 지웅과 그를 돕는 척(?) 하는 목사 '희광'의 만남은 주인공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각자의 고통을 느꼈을 그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처절하다 못해 가혹하기까지 한 그의 운명이 뉴욕까지 그를 이끌었다. 고통의 끝을 바라는 그의 무의식이 낯선 이들의 도시 뉴욕을 그 무대로 삼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소설의 컬러는 블랙이다. 현대를 배경을 하고 있지만 화려한 컬러를 모두 검정과 하양으로 바꿔놓은 흑백영화 같은 느낌이다. 배경음악으로는 영화 <접속> OST에 수록되기도 했던 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가 적당할 것 같다. 짧은 단편 영화를 본 듯한 기분이 든다. 잘 짜인 플롯과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흡입력이 있는 소설이다. 첫 문장을 읽기 시작하여 책을 덮기까지 채 3시간이 걸리지 않은 듯하다. 짧지만 강렬한 고통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지웅의 아내 미혜의 배속에서 그 고통을 태동하고 있었다. 삶은 고통이라 했던가. 끝나지 않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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