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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월간샘터 2016년 3월호 ㅣ 월간 샘터
샘터사 편집부 엮음 / 샘터사 / 2016년 2월
평점 :
본격적으로 봄이 다가오는 신호일까. 쌀쌀하기만 했던 날씨가 어느새 포근해진 듯하다. 1년 중 4분의 1이 벌써 끝나가고 있다. 2016년이 시작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다. '시작'이라는 기분을 느낄새도 없어 어느새 '익숙'이란 느낌에 젖어들고 있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처음'이라는 순간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가 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처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눈코 뜰 새 없이 시간을 흘러 보내다 보면 그 첫 순간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초심을 잃지 말자'라는 말도 있는 듯하다. 초심. 처음 마음가짐. 올해 들어 3번째로 만나게 된 샘터는 '처음'을 떠올리게 해준다. 처음이라는 말처럼 많은 것을 추억하게 하는 것도 드문 것 같다.
1990년대 가요계를 이끌었던 살아있는 전설인 가수 신승훈. 그가 발표한 앨범엔 수많은 히트곡이 담겨있다. 그중에서 1993년 3집 앨범에 수록된 '처음 그 느낌처럼'이란 노래가 있다. 늘 곁에 있어 친한 친구로만 여겨졌던 그녀의 소중함을 미처 알지 못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곁에 있는 그녀를 본 후에야 비로소 그녀를 처음부터 사랑했음을 깨닫게 된다. 빠르고 경쾌한 노래지만 그 속에는 후회, 아쉬움이 들어있다. 노래로 들을 땐 그저 듣기 좋은 사랑 노래로만 여겼었는데.. 새삼 이 노래가 다르게 느껴진다.
『처음 그 느낌처럼』. 이번 호에 실린 특집 기사의 제목은 앞서 얘기한 노래 제목과 같다. 여섯 명의 인사 각 개개인의 삶에서 처음의 순간, 그 느낌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처음'에 관한 이야기다. 하나씩 하나씩 펼쳐진다.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된 소개팅. 처음으로 쓰게 된 나만의 단편 소설. 외모 콤플렉스가 있던 내가 처음 화장을 하게 된 날. 미군부대 카투사에 배속되어 맞이하게 된 첫 이국 문화의 충격. 태어나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한국 땅을 벗어난 첫 해외여행. 특별할 것 없이 나를 포함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이야기다. 여기에도 처음의 순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한발 나아가며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된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그 '처음'이다. 그렇기에 그 어떤 처음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 내게 떠오르는 잊을 수 없는 처음은 갓 태어난 내 아이를 안아보았을 때다. 그 순간은 아마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나에게 기억될 것이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다. 여기서 그런 사람을 만났다. 바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느냐고? 설마. 하지만 난 이분을 잘 안다. 정확히 말하면 이 분이 쓰신 글을 잘 안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를 통해 그를 처음 알게 되었다. 참 글 재미있게 쓰시는 분이다. 그리고 멋지게 사시는 분이다. 그런 그가 최근 이런 책을 냈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역발상적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외로운 걸 싫어하는데 가끔은 외로워야 한다니. 그것도 격하게. 여기에 그가 말하는 '외로워야 한다'라는 숨은 뜻이 담겨 있다. 소위 명망 있는 교수 자리에 사표를 내던지고 떠난 혼자만의 고립 여행을 통해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내 삶을 돌아보고자 한 것은 아닐까. 현재 그를 사로잡고 있는 키워드는 리추얼과 바우하우스. 조금은 생소한 그것들이 이다음에 그를 통해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해진다.
마지막으로 '글쓰기'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내게 유독 이번 호에서 심쿵한 글귀가 있다. 기생충 박사 서민 교수님이 말이다. '글쓰기 연습은 비단으로 치장된 화려한 길을 걷는 게 아니라 낙타를 끌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걸어가는 일입니다. 굳은 의지로 그 사막을 통과하는 분만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그 느낌을 적고 또 나름대로 끄적이는 글쓰기에도 분명 목적이 있음을 허튼 노력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일깨워주는 글귀다. 왠지 모르게 용기가 불끈 솟아오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