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비밀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전쟁이 남긴 폐해는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의 뇌리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세대가 바뀌어도 역사라는 미명하에 계속해서 전해지고 기억된다. 그렇기에 전쟁이란 인류의 역사와 늘 함께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은 셀 수 없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화자되는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닐까 싶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4일, 아돌프 히틀러가 다스리는 나치 독일군이 폴란드 서쪽 국경을 침공한 것을 시작으로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걸쳐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일본이 항복함에 따라 사실상 종전되기까지 6년에 걸쳐 일어난 전쟁이다.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남긴 파괴적인 전쟁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지 70년 가까이 흐른 오늘날에도 전쟁에 따른 후유증은 남아있다. 전쟁을 겪지 못한 다음 세대에게는 그저 역사적 사건에 지날지 모르지만 침략자와 피해자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어버린다.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에게도 그처럼 떼어낼 수 없는 무거운 짐이 있으니 조금은 더 이해가 된다.

독일 스릴러 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얀 제거스는 그가 창조해낸 고독하지만 유능한 수사관인 마탈러 형사를 통해 이 무거운 주제로 명작 스릴러를 탄생시켰다. <한여름 밤의 비밀>은 긴박감 넘치는 짜임새 있는 스토리 전개는 읽는 이들로 하여금 소설에 빠져들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소설에 대한 평가는 역시 독자들의 몫이었던지 2008년 그에게 오펜바흐 문학상에 수상되는 영예를 안긴다. 그와 더불어 독일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인기리에 방영되기도 했다. 외화 소설이기에 국내 팬들에게 소개된 시기는 8년이나 지나버린 오늘이지만 소설이 갖는 특유의 매력은 전혀 잃지 않은 듯하다. '절대로 독자를 지루하게 만들지 않겠다'라는 작가의 좌우명은 그저 명망 있는 인기 작가의 빈말이 아님을 증명한다.

얀 제거스는 사실 작가의 필명이다. 스릴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익히 들어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여름 밤의 비밀>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국내 출간된 작품은 지금까지 두 권이다. 전작인 <너무 예쁜 소녀>도 마탈러 형사가 등장하여 아름다운 소녀를 둘러싼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이번 작품은 그에 이은 두 번째 마탈러 형사 시리즈로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나치에 의해 유대인 수용소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아버지가 남긴 악보로 인해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사건 해결을 위해 마탈러 형사가 추적해 가는 과정에서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게 된다. 독일 시민에게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될 수 없는 주제로 긴장감 넘치는 흥미진진한 소설이 탄생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소규모 극장을 운영하던 70대의 노인, 호프만. 어느 날 그날 방송국 여기자와 만남을 계기로 TV 방송에 출연하게 된다. 그는 방송에서 그동안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그의 과거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나치에게 끌려간 부모님의 이야기며 자신이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그렇게 방송이 나간 직후 방송국으로 한 통을 전화가 걸려온다. 나치에 의해 끌려갔던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유품을 남겼다는 남겼다는 것이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의문의 낯선 여인​은 바로 아버지가 끌려갔던 아우슈비츠에서 만난 친구의 딸이었다. 아버지의 유품은 다름 아닌 평소 아버지가 좋아했던 작곡가 오펜바흐의 미공개 악보였던 것이다. 세계적인 작곡가의 미공개 악보는 그야말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악보에 관한 전화가 쇄도하게 되고 자신을 취재했던 여기자가 자신을 대신에 출판 계약 대리를 자청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어린 시절 그가 살던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게 된다. 하지만 곧이어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그녀는 행방불명되버린다. 그와 동시에 아버지의 유품인 악보도 사라진다. 과연 악보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사건을 맡게 된 마탈러 형사는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게 되는데..

오랜만에 실로 재미있는 스릴러 소설을 읽은 기분이다. 얀 제거스는 진정 페이지 터너다. 한순간도 책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을 정도로 한마디로 말하자면 '꿀잼'이다.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탄탄한 스토리 구성으로 짜임새 있게 잘 살려낸 듯하다. 어쩌면 많이 다뤄지는 주제인 만큼 자칫 몰입감을 방해할 수도 있을 법한데도 전혀 그렇지 않다. 얀 제거스가 탄생시킨 형사 캐릭터인 마탈러는 소설에 빠지게 할 만큼 매력적이다.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와 닮은 구석도 있는듯한 게 두 캐릭터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전작인 <너무 예쁜 소녀>를 빨리 읽고 싶어진다. 그와 동시에 앞으로 나올 '마탈러 형사 시리즈'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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