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레이얼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비트레이얼. 배신. 사람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상처가 되는 것은 믿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경우다. 그 이유는 사람은 감정을 갖고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는 다른 어떤 상처보다 그 충격은 배가 된다. 또한, 그 상처가 아무는데도 두 배, 세 배의 시간이 필요하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배신을 당했다면 어떻겠는가. 상상조차 하기 싫을 만큼 끔찍하다. 이기적이라고 비난할지언정 그 일만은 결코 내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한다. 그래서 배신의 열기는 무척이나 뜨겁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을 정도로.

공인회계사인 로빈은 사람들의 자산관리를 해주며 그들을 재정적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파산 직전에 몰려 심각한 위기에 빠진 한 남자가 자신의 사무실에 찾아온다. 그의 이름은 폴이다. 그는 미대 교수이자 유명한 화가다. 로빈은 첫눈에 보헤미안 스타일의 이 매력적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을 직감한다. 그렇게 위험한 불같은 사랑은 시작되고 그들은 결혼하기에 이른다. 모든 일에 계획적인 로빈과 달리 폴은 돈을 헤프게 쓰는 버릇이 있다. 결혼 전 파산 위기에 몰려 자신을 찾았던 그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로빈을 실망하게 된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폴은 뜻밖의 휴가를 제안한다. 젊은 시절 폴이 그림을 그리며 머물렀던 북아프리카 모로코로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폴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로빈은 결국 폴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들은 오랜 비행 끝에 모로코의 항구 도시 에사우이라에 도착한다. 폴은 에사우이라의 일상을 화폭에 담으며 작품 활동을 하고 로빈은 프랑스어를 배우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로빈은 폴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행복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아이를 갖기로 폴과 약속했던 로빈은 이곳에서 그 꿈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꿈은 폴이 로빈 몰래 정관수술을 받은 사실이 들통 나면서 산산조각 나버리고 만다. 대체 폴은 왜 자신을 배신한 걸까. 야속한 거짓말에 속은 로빈은 폴에게 죽어버리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이 사실을 안 폴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뒤늦게 죽어버리라는 메시지를 남긴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며 돌아온 로빈을 기다리는 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어진 폴의 흔적뿐이다. 도대체 폴은 왜 사랑하는 아내 로빈을 배신하고 사라져 버린 것일까. 남편 폴을 찾아 나선 로빈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작가가 되어버린 <빅 픽처>의 더글러스 케네디. 전작인 <빅 퀘스천>을 통해 더글러스 케네디라는 인간의 민낯을 숨김없이 보여주었던 그가 후속작으로 배신이라는 뜨겁고 치명적인 감정을 들고 나왔다. 국내 처음 소개된 그의 작품인 <빅 픽처>부터 지금까지 그의 소설은 한 가지 중심 테마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물음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되물어왔다. 그리고 <빅 퀘스천>에선 본인의 대답을 어렴풋하게 들려준다. 그의 진솔된 에세이를 통해 여태껏 몰랐던 그를 알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사랑, 이별, 기쁨, 슬픔, 행복, 배신과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로 답을 찾아간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에 대한 이야기가 낯설지는 않다. 그의 작품 <위험한 관계>에서도 믿었던 사랑에 대한 배신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 작품에서도 로빈처럼 우연히 매력적인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 여자 샐리가 등장한다.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자신의 생활을 포기하고 결혼이라는 행복한 선택을 하게 된 샐리지만 남편 토니의 자상했던 모습은 한순간이었다. 결혼으로 바뀐 환경과 때마침 하게 된 임신으로 극도로 신경은 예민해져 불면증까지 찾아오지만 남편은 아무런 도움의 손길을 건네지 않는다. 위험한 결혼 생활은 결국 남편의 외도와 이혼으로 이어지고 법정 싸움에까지 치달아간다. 한 여자의 '불행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지는 걸까'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소설이다.

이전 작품인 <위험한 관계>와 <비트레이얼>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진짜 나를 찾길 바라는 마음이다. 진짜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이 두 소설에 담겨있다. 인생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으며 결코 내 뜻대로 이뤄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인생을 살아가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내 인생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지 깨달아야 하는 이유다. ​ <비트레이얼>의 로빈은 자신을 배신하고 사라진 남편 폴의 쫓아 헤매다 사하라 사막에서 만난 노 목사에게서 깨달음을 얻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문제가 분명하게 드러났음에도 보려고 하지 않죠. 상대에 대한 연민 때문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받게 될 상처가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그럼에도 제대로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지요." "목사님은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춘 것 같아요." "타타에서 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함께 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더없이 절망적인 외로움이 찾아오거나 타인에 대한 의심으로 번민할 때 누군가 옆에 함께 있어주며 세상에 혼자인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때도 있지요." 사하라 사막을 홀로 달릴 때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으셨나요?" "네,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에게 무슨 말씀을 남겼는지 듣고 싶어요." "한시바삐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내가 주인공인 내 인생의 길이다. ​때론 멀리 돌아서 올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빅 퀘스천> 이후 처음 만나는 더글러스 케네디의 소설이 내게 큰 깨달음을 던져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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