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바 1 -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4
니시 카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이 세상에 완벽한 삶을 사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없다. 다만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완전하다는 것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 그 자체일지 모른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렇기에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인생은 바다의 이중적인 면을 갖고 있다. 때로 바다는 마치 죽어있는 것처럼 고요하다. 그것이 하늘이 아니라 바다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수평선 때문이다. 그러나 한순간 바다는 거칠고 사나운 생명체가 되어 살아 움직인다. 그 생명력은 흡사 이 세상을 다 쓰러버릴 것처럼 거대하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원하는 데로 바라는 데로 흘러가지 않는다. 때론 거친 풍랑을 만나 넘어지고 쓰러진다. 그러면서 때론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다 다시 고요한 바다를 마주하게 된다.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며 2015년 일본 서점 대상 2위에 뽑힌 이 소설은 바다와 같은 우리 인생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사라바>라는 책 제목부터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아내게 만드는 소설이다. 처음 접하는 뜻 모를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되뇌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느껴진달까. 마치 주문과도 같다. 사실 주문이 맞다. 소설 속 주인공이 어린 시절 일본에서 멀리 떨어진 이집트에서 만난 친구와 주고받던 둘만의 비밀스러운 주문이다. 아픔, 상처, 고통, 이별, 사랑, 행복을 표현하는 단 한마디가 바로 '사라바'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평범하지 않았던 주인공 아유무의 인생은 오히려 그 반대다. 누구보다 평범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 이유는 어릴 적부터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아 사사건건 부딪쳤던 누나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소극적이고 튀지 않으려는 습관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에겐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동네에선 조용하고 예쁘장한 아이로, 학교에선 친구들과 사이좋게 어울리는 동급생으로, 사회에선 인기 있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늘 주위의 기대에 부흥하며 자신을 속여오던 그의 삶의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던 세상의 마이너리티였던 누나가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아유무 앞에 나타난다. 그것도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으로 너무나 평안한 모습으로. 더구나 삶의 낙오자로 전락해버린 아유무에게 진심 어린 조언까지 한다. 가족 중에 자신을 제외하곤 모두가 비정상이라고 여겨왔던 그다. 더구나 가장 기피했던 누나였는데... 아유무가 잊고 살았던 것은 무엇일까. 문득 그동안 잊고 지냈던 소중한 친구와의 약속이 생각난다. 힘들 때마다 가만히 손을 잡아주면서 속삭여주던 둘만의 주문, '사라바'도 함께. 아유무는 지금껏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어린 시절 이집트에서 만났던 친구를 찾아서.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과연 아유무는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아무리 힘든 삶을 살아온 그 누구라도 자신의 기억 한 편에는 행복했던 순간이 자리하고 있다. 그 행복의 여운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게끔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바로 그 행복했던 순간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사라바.' 지금껏 내가 들어본 가장 멋진 주문이다. 그 짧은 세 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듯하다. 힘들 때는 위로가 기쁠 땐 더 없는 행복이. 아유무가 그동안 찾아 헤맨 것은 결국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라바'가 아니었을까. 오롯이 자기 자신만이 믿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내가 온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믿음.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나는 그 믿음을 갖고 있는가.

'나는 이 세상에 왼발부터 등장했다'라는 주인공 아유무의 독백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나는 왼발을 내디딘다'로 끝을 맺는다. 이야기가 끝남과 동시에 새롭게 출발한다. 그렇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는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다. 이제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갈 차례다. 때론 지치고 힘들어 쓰러질 때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 가만히 내 안의 나에게 주문을 걸어야겠다. 사라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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