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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도서관 - 황경신의 이야기노트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2월
평점 :
바다는 여러 개의 강줄기가 만나 이뤄지듯이
이야기는 여러 개의 짧은 이야기로 완성된다. 이야기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야기가 갖고 있는 힘이다. 우리가 이야기를 읽는 이유는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이야기가 작가의 상상력으로 완전히 무장한 채 비현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할지라도 그 이야기의 본질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 이유는
그 글을 쓴 작가는 현실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야기에는 글쓴이의 생각이 담겨 있으며 이야기를 읽는 우리는 그 메시지를
읽는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중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가 있다. 그 이야기는 주인공 소녀의 가족이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사를 가는 차 안에서
시작한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하는 그 여행은 어느 순간 현실을 벗어나 비현실의 세계로 주인공 소녀는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비현실의 세계를 경험하고 난 후 다시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현실 속으로 되돌아온다.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을 아무 거리낌 없이 넘나들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서른여덟 편의 이야기들 속에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아쉽게도 이 책의 제목과 같은 『국경의 도서관』은 아니다. 그것은 『바나나 리브즈』라는 제목의 처음 등장하는 짧은
이야기로 여행을 대신해주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여행이란 본디 자신을 위한 것이기에 누군가 그것을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야기의 주인공의 이야기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간다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이 있어요.
비행기나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싫고,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잠을 자는 것도 싫고, 여행 가방에 넣어 가야 할 것을
선택하는 것도 어려운 사람들이요. 그래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여행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요." 여행이 서툰
이유다. "또 다른 부류는, '여행 중'이라는 팻말을 걸고 한동안 잠적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에요. 일주일 정도 여행을 떠난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나면, 그 기간 동안 웬만한 일들은 피할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의 결혼식이라거나 가족행사를 별다른 가책 없이 건너뛸 수도 있고, 이런저런 부탁
같은 것도 거절할 수 있잖아요. 연인에게서 잠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생각보다 많아요." 여행이 필요한 이유다.
내가 이 이야기에 끌린 이유다. 누구나
떠나기를 원하지만 생각만큼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게 바로 여행이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이를 위해 떠나는 여행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여행의
목적은 나를 위한 것이 된다. 그것을 행하는 주최가 나든 나를 대신하는 누군가이든 크게 상관없다. 여행이라는 행위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은 같을 테니까.
<생각이 나서>의 저자 황경신이
<초콜릿 우체국>에 이어 그 두 번째 이야기를 내놓았다. 그녀의 이야기들은 이상한 힘을 갖고 있다.
그것도 신비한 힘을. 각각의 이야기들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다. 현실인지 상상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 SF나 판타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상적이다. 아니, 몽환적이라는 표현이 어쩌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이야기의 큰 테마는 만남과 이별이다. 낯선 이들의 만남과 이별,
연인들의 만남과 이별, 사물들의 만남과 이별, 위인들과의 만남과 이별 등. 책 속에 끼워 넣는 책갈피가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슈베르트와
셰익스피어가 이야기 속에서 되살아나기도 한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번쩍이는 독특한 생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도 있다. 그 작은 이야기들이 흘러들어 큰 이야기가
된다.
<국경의 도서관>이란 책을
읽으면서 나는 서른여덟 번의 여행을 하며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날 때마다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
이 책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서른여덟 편의 짧은 이야기들의 향연. 그 환상의 세계로 우리들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