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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악마다
안창근 지음 / 창해 / 2015년 11월
평점 :
제목만큼이나 표지 그림이 섬뜩한 강렬한
것이 인상적이다. 범죄 심리 스릴러를 다룬 국내 장르 소설이다. 이런 종류의 장르 소설을 좋아함에도 많이 접해 보지 못한 듯하다. 어쭙잖은
독서량이 주는 한계가 아닐까 싶다. 장르 소설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 특유의 인기를 누리는 듯하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블랙홀 같은 마력을 갖고 있다고 해야 될까. 다른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짜릿함이 있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그 짜릿함에 길들여진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각설하고, 올해가 가기 전 그 짜릿함을 선사해 줄 이 작품을 만나보자.
암호로 가득한 한 통의 메일이
도착한다. 전문가에 의해 해독된 그 메일엔 발신인이 누군지를 가리키는 짧은 한 문장만이 있을 뿐이다. 'My Name Is Phantom.'
자신을 유령이라고 소개한 이 의문의 사나이는 홍대의 거리에서 그것도 대낮에 살인이 일어날 것을 예고한다. 한편, 미국의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는 행사가 벌어지는 홍대 앞거리는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가운데 어디선가 익숙한 음악이 흐른다.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도입부가 흐름과 동시에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 똑같은 춤을 춘다. 그렇게 <스릴러>
플래시몹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것도 사람들 틈에서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진다. 곧이어 유령의 살인예고로 인해 홍대 거리를 잠복근무하던 경찰이
사건 현장에 도착한다. 하지만, 이미 피해자는 과다 출혈로 숨진 상태이고 살인범인 유령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지 오래다. 전대미문의 연쇄 살인이
계속됨에 따라 수사를 담당하는 관할 경찰서는 혼란에 빠진다. 유령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전직 경찰로 최고의 프로파일러였던 강민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교도소. 그 역시 유령과 같은 연쇄살인범이다. 연쇄살인범 vs 연쇄살인범. 과연 그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전대미문의 연쇄 살인범을 잡기 위해 그와 동급인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고수를 매치 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강력계 형사 시절 최고의
프로파일러로 살인죄로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현재 그는 미국 연방 수사국(FBI)에서 연수를 받고 있을 몸이다. 앞날이 창창한 강민수가 연쇄
살인범이 되어 감옥에 있는 것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유령이란 존재는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그래서일까. 소설 속 유령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강민수 밖에 없음을 지각한다.
살인은 이유를 막론하고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하지만, 유령의 행동이 틀렸다고 큰 목소리로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없을 듯하다.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선과 악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말을 하곤 한다. 선이 있는 곳이 악이 있고 악이 있는 곳이 선이 있다는 뜻이다. 종이 한 장 차이로 달라질 수 있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런 면에서 선과 악은 사람의 마음과 닮았다. 아니, 표현만 달리했을 뿐 같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무서운
존재인지 새삼 깨달았다. 책 제목처럼 '사람이 악마다'라는 말은 전혀 근거 없는 허황된 말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베일에 둘러싸인 유령의 존재가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작가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도 드러난다. 이 소설은 성폭력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가족처럼 가까운
주변 인물에 의해 희생되는 여성들의 성폭력을 다룬다. 유령이란 존재는 그 성폭력 피해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복수가 아니다. 피해자들을 위한 사회적 보상은 더더욱 아니다. 그는 단지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우리의 작은 관심을 원할 뿐이다.
'나만 아니면 된다'라는 식의 무관심이 성폭력 피해자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어쩌면 유령이란 눈이 보이지 않는 우리들의
무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