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유년 시절의 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그때 그 시절의 성장통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돌이켜보면 어렸기에 마냥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고 어렸기에 더욱 슬펐던 순간도 있었다. 성인이 된 우리들은 '만약 그때 이랬더라면'이라고 중얼거리며 가끔 어린 시절의 나로 되돌아가곤 한다. 과거 행복했던 순간으로 그리고 후회했던 그 순간으로.

아무 말없이 무책임하게 가족을 떠나버린 엄마로 인해 둘녕은 아버지를 따라 외가 할머니가 살고 있는 시골로 내려가게 된다. 그곳에는 외할머니와 이모, 삼촌 그리고 사촌인 수안이 살고 있다. 수안과 둘녕은 나이가 같다. 하지만, 두 소녀의 삶은 그동안 완전히 달랐기에 쉽게 가까워지기 힘들다. 그렇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둘녕과 수안 그리고 외가 식구들. 갑작스러운 삶의 변화가 달갑지만은 않다. 그러던 와중에 시골의 낯선 곳에서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만 둘녕. 그 후 수안과 둘녕은 어딜 가나 붙어 다니게 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수안과 둘녕은 둘도 없는 자매이자 친구가 되어간다. 수안은 수안대로 또 둘녕은 둘녕대로 각기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그렇지만 두 소녀의 우정과 사랑이 그 아픔까지 서서히 치유해간다... 서른여덟의 둘녕. 그녀는 혼자다. 항상 그녀와 함께 있을 것만 같던 수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수안의 자리를 둘녕의 몽유병이 차지하고 있다. 둘녕은 자신의 몽유병이 수안에 대한 죄책감이라 여긴다. 마냥 행복한 순간만 이어질 것 같은 둘녕과 수안, 두 소녀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어엿한 성인이 되어버린 둘녕은 어린 시절의 수안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상처를 갖고 있는 두 소녀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겪게 되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성장 소설이다. 소설은 둘녕의 시선을 따라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이종사촌 자매인 수안과 둘녕의 만남 그리고 헤어짐. 그리고 현재의 둘녕의 모습이 서로 맞물리며 시간의 톱니바퀴처럼 굴러간다.

​전작인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로 가슴 저릿한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 많은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던 작가가 이번엔 그 특유의 잔잔함과 애잔함을 살려 다시 한번 독자들을 찾아왔다. 3년 전 처음 세상에 나온 이후 시간이 흘러 지금에서야 다시 그 빛을 바라는 아름다운 소설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추억거리들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다.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은 어린 시절 모두가 즐겨 보던 그야말로 소년, 소녀들의 꿈을 대신해주는 그런 책이었다.

아름다운 문체에서 느껴지는 슬픔은 그대로의 슬픔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슬픔을 딛고 일어선 행복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소설의 마지막이 씁쓸함이 묻어남에도 불구하고 가슴 따뜻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한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어린 시절의 나를 추억하며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소설 속 둘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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