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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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하얀 종이를 물들이는 독이라는 글자의 기운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편집자의 의도일까. 아니면 무엇으로도 꾸밀 수조차 없는 '독'이라는 글자로 인한 심플함일까.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에겐 강렬하다. 마치 내 몸엔 독 기운이 퍼져 나가는 것처럼 '독'이라는 글자가 나를 사로잡는다. 소리도 들린다. 표현할 수 없는 독의 기운이 내뿜는 음흉한 내면의 소리. 곧이어 내 오감을 장악해버린다.

작가 이승우의 소설 <독>은 나이게 이렇게 다가왔다.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악에 대한 탐구라는 주제가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사실이지만 이토록 나의 내면까지 갉아먹어버릴 줄은 몰랐다. 이승우의 <독>은 내게 도화선과 같은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임순관은 어느새 내가 되어 있었고 나는 허구의 인물이 아닌 나 자신을 보고 있었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은 내 안의 선과 악을 알아가는 과정이었고 그중에서 깊숙이 감추어져 있던 악을 꺼내어 보는 시간이었다.

소설은 '우리'라는 제3의 화자가 주인공 임순관이 남긴 기록물인 일기를 발견한 후 그가 왜 이와 같은 기록물을 남겼으며 왜 우리는 그의 일기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며 시작한다. 세상은 그가 남긴 기록인 일기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그에 대해 알지 못 했다. 그가 품고 있는 '독'이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세상과 조금은 다른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한 남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임순관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자아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까 싶다.

동류가 아니라는 것, 이단자라는 것, 같은 울타리 안에 있지 않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람이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다. p.135​

상대편이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원칙에 기대어 논리를 전개하고 행동을 강요하는 것은 명백하게 오류이다. p.207​

이승우의 소설 <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물음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선과 악, 좋음과 나쁨 등을 구분하는 기준이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점이다. 소설 속 임순관의 모습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인의 모습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자폐아적인 성향의 사람이다. 자신만의 세계를 갖고 있는 사람, 4차원의 세계가 있는 사람 등 여러 가지 말로 표현되는 그런 특이한 사람이다. 그런데 문제는 임순관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임순관의 생각의 논리가 결코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면 나 또한 그와 같은 자폐아적 성격의 사람일까.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사람일까. 즉,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이 모호하다. 과연 나의 언행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이가 누구 있단 말인가. 비판이란 곧 자신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공기 속에는 확실히 독이 숨어 있다.

너는 그것을 투명한 공기와 함께 들이마신다.

그것은 너의 몸속에 스며들어가 침전되고 굳어져서 기관과 기관 사이에 날카로운 기하학적 도형을 만들어낸다.

릴케, 『말테의 수기』에서 p.5

나는 하루하루 독을 마시며 산다. 그런데 그 독은 내 안에서 토해져 나온 것이다.

독은 대기 가운데서 내 속으로 들어오고, 내 안으로 들어와 부글부글 끓으며 더 많은 독을 양식해낸다.

내가 숨을 내쉬는 순간 그것들은 나의 내부에서 빠져나와 다시 대기 속으로 들어간다.

나의 내부는 독을 생산하는 거대한 공장이고, 이 세상은 그 독이 유통되는 거대한 시장이다.

시장인 이 세상에서 내가 소비자로서 매일 들이마시는 독은 실상은 나의 내부에서 생산되어 나온 것이다. p.168​​

내 안의 감춰진 '독'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릴케의 말처럼 공기 속에 숨어진 독을 마셨기 때문일까. 아니면, 임순관의 말처럼 내 안에서 토해져 나온 독이 다시 내 안에서 더 많은 독을 만들어 낸 것일까. 무엇이 독이고 무엇이 독이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독조차 나 자신을 이루는 나라는 존재의 일부라는 점이다.

이 소설의 작품 해설을 하신 정홍수 문학평론가는 소설 속 임순관을 '신뢰할 수 없는 화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인 임순관은 자신만의 뚜렷한 논리를 가진 화자가 아닐까 싶다. 그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악의 근원을 내면에서 찾고자 함이 곧 외부와의 단절 또는 자폐의 세계로의 길일지라도 말이다. ​그 이유는 임순관이 갖고 있는 그 독을 그가 아닌 우리가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와 같은 내 생각이 억지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역겹고 거부되어야 하는 임순관의 논리'에 동조된 나의 잘못이라면 잘못일 테니까.

이승우의 소설 <독>만큼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를 진중하게 시도한 소설을 만나보지 못한 것 같다. 이렇다가 저렇고 저렇다가 이러한 작품 속 문장들이 이상하게 아리송하지 않고 뇌리에 들어온 것은 우연이 아닌듯하다. 그의 다른 작품을 빨리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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