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소도중
미야기 아야코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일본이라는 나라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벚꽃과 기모노다. 벚꽃은 일본의 국화로 겨울이 끝나고 찾아오는 봄에 만개하는 꽃이다. 봄날의 벚꽃만큼 아름다운 꽃도 없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오래가지 않고 곧 시들어 버린다. 벚꽃이 흩날리는 거리를 걷는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은 여인의 모습만큼 잘 어울리는 것도 없는듯하다.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중 한 명인 미야기 아야코의 데뷔작인 <화소도중>은 이렇게 일본을 대표하는 두 개의 꽃으로 수놓아진 책의 표지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그 화려함만큼이나 아름다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여인의 뒷모습에 슬픔이 어려 보이는 건 왜일까. 그 이유는 소설을 읽으면서 에도 시대 말기에 한 유곽을 무대로 한 유녀들을 따라가다 보면 알게 된다.

소설은 에도 시대 최대 유곽 지역인 요시와라의 작은 기루인 야마다야의 유녀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는 정교하게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유녀에게 절대 허락되지 않는 금기는 바로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치듯 지나간 한지로와의 짧은 만남에서 사랑을 느끼는 아사가리. 결코 마음을 열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유녀들의 머리를 만져주는 미야키치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야쓰. 어릴 적 자신을 버린 친아버지와 손님과 유녀로 다시 만나게 된 기리사토와 그녀의 동생 시노노메. 야마다의 안주인으로 때론 계산적이고 유녀들에게 못되게도 굴지만 유녀들의 머리를 올려주는 장인인 야키치에게만은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가쓰로. <화소도중>은 유녀들의 금기의 사랑을 이야기하며 그녀들의 꿈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꿈과 사랑이 반드시 해피엔딩은 아니다. 어쩌면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사랑이요 꿈꾸지 말았어야 할 희망은 아니었나 싶다.

'여자에 의한, 여자을 위한' R-18 문학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답게 여성들의 관능적인 성적 묘사가 탁월하다. 지금껏 읽어본 소위 야하다는 소설 중에서 단연 최고가 아닐까 싶다. 이는 '여자를 위한' 소설이기에 '남자'인 내가 느끼기에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만약 반대로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작품이 세상에 나온다면 여성 독자가 느끼는 것과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사실 야하다는 느낌은 소설을 읽으면서 전반적으로 야하다는 느낌은 그렇게 많이 받지 못 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성적 묘사는 유녀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 시대의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같은 동양 문화권에 속해 있음에도 일본과 우리나라의 문화적 차이는 크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래 계속 논의되어오던 일본 문화 개방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해가 1998년도이니 올해 17년째가 되었다. 일본 문화가 개방된 이후 처음 느꼈던 문화적 충격이 새삼 떠오른다.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일본의 대중문화가 유입되면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전면적인 개방은 그 이후에 이루어졌지만 말이다. 작금의 국제 정세나 역사적 논란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문화적인 측면만 생각해보면 예나 지금이나 일본이라는 나라는 알면 알수록 신비함이 있는 듯하다.

여자들을 위해 여성작가가 쓴 소설 <화소도중>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그리고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작품으로 기억될 듯하다. 그것이 비록 16세기 말 에도시대의 유녀들의 이야기일지라도 말이다. 작가는 일을 하면서 틈틈이 짬을 내어 쓴 이 작품으로 일약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 그녀의 다른 소설에서 또 어떤 여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질지 사뭇 궁금해진다. 그와 더불어 아이러니한 상상도 한번 해본다. 여성 작가가 쓴 남자들을 위한 소설은 과연 어떨까 하는 발칙한 상상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