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열등의 계보 - 2015년 제3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홍준성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0월
평점 :
흔히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말하곤
한다. 맞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하고 물어보면 '그렇다'라고 쉬이 대답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내 인생의 주인공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인데 말이다. 그렇다는 것은 내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은 반증인
걸까? 어떤 면에선 또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알쏭달쏭 애매모호하다. 마치 우리네 인생이 그러한 것처럼.
이야기의 주인공은 김 씨 가문 4대인
김유진. 하지만, 이야기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열등 계보의 시작인 증조부에서 시작한다. 자랑스러운(?) 열등 계보의 꼭대기는 바로 김
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無 없을 무 외자를 쓴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 없이 태어난다지만 이름까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의
無는 너무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단지, 김녕 김 씨 충무공파라는 점 하나밖에 내세울게 없는 그런 사람이다. 이름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 장가 한번 가는 게 소원인 소박한 사람에게 가족들은 생계를 위해 많은 것을 요구한다. 꿈에서조차 조상들이
나타나서 다그친다. 그렇게 집을 나서면서 김 씨 일가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찌어찌하여 하와이 사탕수수밭 이민
노동자가 된 김 무에 이어 그의 아들 조부 김성진. 일제 강점기를 지나 조국의 해방 소식에 귀구하지만 그 또한 그의 아버지와 별다른 것 없이
부유한 삶과는 반대의 삶을 살아간다. 새로 시작한 담배 장사가 라이벌에 밀려 쪽박을 차버리게 된 것이다. 영락없는 거지가 되어 기어든 판자촌.
그곳에서 김 씨 가문 3대가 태어난다. 김철호. 아버지의 가출과 어머니의 자살로 부모를 잃게 된 철호. 설상가상 일하던 공장에서 임금까지
떼인다. 참을 수 없던 철호는 오랜 친구인 용역 깡패 두한을 찾아간다. 그때부터 철호의 인생은 밤하늘에서만 빛나기
시작한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비의 죽음 앞에서
시간을 보내던 열등 계보의 마지막 주인공 유진. 그 앞에 조부인 성진이 나타나게 되고 그의 입을 통해 지나온 4대에 걸친 가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로써 파란만장한 열등 계보 역사가 밝혀진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삶의 반전이 시작되기에 이른다.
<열등의 계보>라니 책
제목부터가 재미를 유발한다. 먼지 모르지만 큭큭큭 웃게 만들만한
재미난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다. 그런데 소설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독자들을 짐짓 진지하게 만들어버린다. 이 소설의 저자는 부산대 철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그런 그가 독자들에게 묻는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사는가?' 소설의 첫 문장을 이렇게 철학적인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4대에 걸친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각 세대를 대표하는 가족 구성원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가 주 내용이다.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두 명만 모여도 우리가 하는 이야기가 바로 너와 내가 사는 인생 이야기다. 인생 이야기만큼 긴장감 넘치고 스릴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없다. 그 많고 많은 썰을 4대에 걸쳐 풀어놓았으니 얼마나 재미있으랴. 이처럼 기구한 가족사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 어이없음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소설을 다 읽고 난 시점에서 다시 한번
소설의 첫 문장을 음미해본다. 지금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있나. 솔직히 잘은 모르겠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애매모호하다. 하지만, 여전히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을 향해 나아간다. 그게 우리네 인생 아닐까. 지나온 과거가 비극이든 희극이든,
열등이든 우등이든 그게 다 무슨 상관이랴.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는 지금의 내 인생이 중요한 것 아닐까. 철학과 콩트를 넘나드는 재미난
소설이다. 웃으며 책을 덮었지만 생각이 깊어지는 그런 소설이랄까. 4대에 걸친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주저 말고 읽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