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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
샤론 모알렘 지음, 정경 옮김 / 김영사 / 2015년 9월
평점 :
사소한 내 행동 하나가 내 아이의 유전자를
결정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 말을 듣는 순간 지금껏 알게
모르게 해오던 나쁜 습관들이 불현듯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가족 몰래 흡연을 하고 있다거나 직장에서 회식을 핑계 삼아 술을 마시거나 하는 등의
그저 평소 해오던 일들이 나 자신은 물론 내 아이와 미래의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즉, 후성유전학적 변화가 자손에게 유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 연구자의 생쥐를 통한 연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새끼 생쥐를 어미 생쥐로부터 떼어놓는 식의 고통을 준 결과 새끼 생쥐들이 자란 후에도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그 생쥐들이 낳은 새끼 생쥐들도 어미 생쥐와 비슷한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후생유전학적인 변화가 자손에게 유전되어 비슷한 행동양식을 보여준 연구
사례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유전자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어엎는다. 유전자는 단순히 나의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왔다. 이 말은
나의 유전자는 부모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이고 절대 변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유전자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나를 통해 내 후손들의 유전자도 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키포인트이자
후생유전학의 메커니즘이다.
우리는 그동안 유전자에 대해 자유롭지 못
했다. 가령 예를 들면, 공부를 잘하고 운동을 잘하고 활발하고 이런 점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라고만 생각해왔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것이 100%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전부라 할지라도 내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해보자.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받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가 따돌림을 받는 이유가 부모로부터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일까.
폭력적인 아이들도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로부터 그들의 폭력성이 발현되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며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다. 환경적
요인이다.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내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렇다면 반대로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유전자는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우성 유전자, 열성 유전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유전자 또한
어쩌면 꾸준한 학습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동안 알면서도 하지 못 했던 나쁜 습관을 고쳤다고 가정해보자. 이를테면 흡연이나
음주와 같은 습관 말이다. 더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을 듯하다. 나의 행동이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칠까. 실례로 내가 알고 있는 지인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인의 가족 중에 오랫동안 꾸준히 흡연을 해온 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뇌졸중으로 그분이
쓰러지게 되었고 병원에서 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분의 뇌의 특정 부분이 변형을 일으켰다고 한다. 오직 흡연 하나가 원인이라고 할 순 없지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한다.
저자는 후성유전학에 대해서 재미있게 표현을
한다. 우리 모두는 이미 영화 엑스맨의 주인공들처럼 슈퍼 히어로라는 것이다. 단지, 슈퍼히어로의 삶을 사는냐 그렇지 않으냐는 우리가 물려받은
유전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고 말한다. 즉,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슈퍼히어로 유전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후성유전학이라는 것이 우리에겐 낯설다. 그만큼 앞으로 그에 대한 연구와 발전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뜻한다. 책에서 보여주는 여러 사례들로 미루어
볼 때 결코 허무맹랑한 논리는 아닌 듯하다. 이미 우리 자신도 그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후성유전학이 얼마만큼 발전하느냐에 따라서
그동안 불가능했던 유전병의 치료가 가능해짐은 물론이다. 또한, 그 못지않게 우리의 삶도 개선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후성유전학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앞으로 저자의 연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