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 - 필사, 나를 물들이는 텍스트와의 만남
장석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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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읽다 보면 가슴을 울리는 문장들을 만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사진을 찍거나 직접 글을 써서 SNS에서 올리곤 한다. 이와 같은 행위는 나에게 감동과 깨달음을 준 그 문장들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있어 이렇게 편리하게 하지만 옛 선조들은 어떻게 했을까. 그렇다. 필사. 우리 선조들은 간직하고 싶은 좋은 책이 있다면 필사를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선조들의 방식인 이 필사가 행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왜 그럴까.

​필사(筆寫). 베께 쓰는 것을 말한다. 사진을 찍거나 스마트폰으로 SNS에 올리는 대신 종이에 연필로 직접 그 문장을 써보는 것이다. 감명받은 문장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생각에 하는 행동임에는 이유가 같다. 하지만, 방법과 효과는 완전히 반대다. 사람은 글을 눈으로 보면서 읽는 것보다 쓰면서 읽는 경우 더 오래도록 기억한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필사를 하려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와 더불어 필사한다는 것은 그 글을 쓴 작가가 되는 것이며 그 글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자신이 온전히 글 속으로 빠져듦을 의미한다. 이 책 속에 담긴 문장들을 읽고 쓰는 동안은 글의 바다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 한 권의 책 속에 오래도록 간직할 문장들을 추슬러 담은 이는 장석주 시인이다. 그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문학비평가이기도 하다. 약관의 나이에 문학계에 시인으로 등단한 이래 근 30년 가까이 읽고, 쓰는 일을 해오고 있다. 긴 세월 동안 그가 만난 수많은 문학 작품들 속 멋진 문장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다섯 가지 테마를 큰 흐름으로 하여 51개에 이르는 명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감정을 다스려주는 명문장, 인생을 깨우쳐주는 명문장, 일상을 음미하게 해주는 명문장, 생각을 열어주는 명문장, 감각을 깨우는 명문장.

눈에 익숙한 작가와 그의 작품들도 눈에 띈다. 피천득의 <연인>, 레프 톨스토리의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칼릴 지브란의 <예언>, 야마무라 오사무의 <천천히 읽기를 권함>, 성석제의 <소풍>, 박완서의 <호미>, 최인호의 <최인호의 인생>, 김영하의 <김영하의 여행자 하이델베르크>,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 한강의 <노랑무늬 영원>. 읽어봤지만 미처 알지 못하고 스쳐갔던 문장들과 첫 만남처럼 설렘을 주는 새로운 문장들이 한데 어우러져 나를 기다리는 듯하다. 어서 펜을 들고 나를 읽으며 써달라는 듯이.

이 책은 아낌없이 독자들에게 주는 책이다. 멋진 문장을 비롯하여 독자들이 직접 베껴 쓸 수 있도록 자신의 반쪽까지 내어준다. 이렇게까지 필사를 원하는 아니, 하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하는 책이라니. 어쩔 수 없다.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 굳이 그 달콤한 유혹을 마다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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