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의 연인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담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내겐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사랑을 테마로 한 소설들은 지금껏 내가 접한 소설들 중에서 단연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주된 이유는 아마도 소설 속에 녹아져 있는 정서적인 측면이 내 개인적인 감성과 잘 들어맞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나라다. 예부터 지금까지 복잡 미묘한 관계가 지속되어 오고 있는 희한한 이웃 나라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정서와 우리의 정서가 다른 듯 닮아 있는 이유다. 그래서 이곳 한국 땅에서 읽는 일본 소설이 낯설지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듯하다.

소설의 배경은 일본의 고속철도인 신칸센이 해외 첫 수출의 쾌거를 이뤄내며 타이완에서 그 첫 프로젝트 진행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흐름은 타이완 고속철도 준공 과정이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이야기는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그 인연은 모두 타이완과 연결되어 있다. 스무 살에 타이완에 배낭여행을 통해 처음 만난 일본여자 하루키와 타이완 청년 료렌하오, 타이완 고속철도 프로젝트를 위해 타국 땅에 와서 일하고 있는 일본 상사원 마코토와 타이원 호스피스 여인 유키, 과거 타이완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했지만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헤어져야만 했던 가쓰이치로와 랴오총, 소꿉친구에서 이제는 어엿한 성인인 되었지만 그는 백수생활을 전전긍긍하고 있고 그녀는 캐나다에서 유학하던 중 일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채 돌아온 채 재회하게 되는 천웨이즈와 창메이친. 일본의 고속철도가 일본을 넘어 타이완에서 새롭게 달려가듯이 일본과 타이완의 청춘 남녀가 인연의 길을 이어간다.

타이완이란 도시가 갖고 있는 매력에 요시다 슈이치만의 소설적 매력이 더해져 보기 드문 로맨스 소설이 탄생한 듯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마치 타이완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타이완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타이완의 거리, 음식, 날씨 그리고 사람들이 오가는 타이완의 모습이 눈앞에 풍경처럼 그려진다. 작가가 이 작품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단번에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이 작품은 타이완에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했던 작가의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이처럼 잘 쓰인 소설을 읽고 있자니 지금 내가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렇게 소설에 빠지게 되면 금세 주위가 조용해지고 책장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내 머릿속은 온통 소설 속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

요시다 슈이치. 그는 말이 필요 없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얼마 전엔 <분노>라는 작품으로 그를 만났었다. 불과 한 달 도 채 되지 않은 어느 시점에 말이다. 그전부터 나는 요시다 슈이치란 작가를 좋아해왔다. 아니, 여전히 그것은 진행 중에 있다. 작가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아니 정체기에 있을 때에도 그의 작품들을 생각하며 곧이어 나올 작품을 기대한다. <타이베이의 연인들>은 그런 내게 뜻하지 않게 찾아온 단비 같은 소설이다. <분로>라는 작품으로 작가 특유의 섬세함과 감동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그 감흥은 더 크게 다가왔다.

그의 전작인 <동경만경>을 잇는 또 하나의 연애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다. 사견을 듬뿍 담아 그간의 작가의 작품을 평했을 때 가장 멋진 연애소설이 탄생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 한편의 소설에서 나는 희로애락을 넘어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숭고한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내가 요시다 슈이치란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되었으며 나아가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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