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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ㅣ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0
서유미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도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우리는 그것을 일상이라 부른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흘러가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우연히 찾아온 작은 균열에
불과하다. 늘 가던 길을 벗어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처럼 그렇게 일어난다. 우리는 그것을 틈이라 부른다.
세 여자가 대중목욕탕에서 갓 목욕을 마치고
걸어 나온다. 미처 드라이를 할 새도 없었던 걸까. 머리에서 물기가 남아있다. 그녀들은 갑자기 생각난 듯 학창 시절 먹었던 떡볶이집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오랜만에 추억을 곱씹으며 매콤한 떡볶이를 입안에 넣고 잘근거리고 오물거린다. 세 여자는 오랫동안 한 동네에 살았지만 오늘처럼 얘기 꽃을
피우고 한마음이 되어 분식집까지 찾아간 것은 처음이다. 그녀들이 만난 게 된 건 각기 다른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난 '틈'에 의해서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며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책임과 의무 그리고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의 행복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자, 남편의 갖은 외도에 이골이 나며 급기야 이제는 맞바람을
피우며 서로를 인정하는 듯한 삶을 살아가는 여자, 두 아이의 엄마로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로 전세 집값을 걱정하며 평범한 주부지만 어느 날
우연히 남편의 외도를 목격해버린 여자. 각기 말할 수 없는 사정을 갖고 있는 그녀들이 우연히 집 근처 대중목욕탕에서 만나게 되면서 서로의 아픔을
들어주며 위로를 받고 위안은 얻게 된다. 평범했던 일상에 우연히 생겨버린 틈은 자꾸만 커져간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 틈을 더 벌어지게 하는
것도 더 이상 벌어지지 않게 메꾸는 것도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음을 깨닫게 된다.
소설은 세 여자의 미래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틈이 벌어진 상태에서 그대로 멈출 것인지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거기까지만 보여준다. 그녀들의 일상에 벌어진 틈을 메꾸는 일은 오롯이
그녀들의 몫이라고 말하는 있는 듯하다. 평범했던 일상을 하루아침에 뒤바꿔 놓는 것은 어찌 보면 이렇게 작은 사건으로 인해 벌어지는 틈에 의해서가
아닐까 싶다. 견고한 유리가 깨지는 것도 단단한 고층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것도 그 시작은 작은 틈에서 시작한다.
우리의 인생은 어쩌면 틈과 틈 사이에서
일어나는 아슬아슬한 사건들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조금만 잘못하면 쉽게 깨져 버릴 수 있는 그런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의 인생은 유리와 달리 복원이 가능하다. 복원이 힘들다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수도 있다. 그러면서 삶은 이어진다. 또 다른
틈을 만나기 전까지.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
여자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예전 자신의 모습으로 남편을 만나러 가는 장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소설의 결말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마지막 장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바로 이 점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