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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이 세상엔 나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아주 많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곳에서는 생명이 탄생하기도 하고 반대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며 도둑, 살인, 강간 등 수많은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나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어떤 특정 사건은 뉴스 미디어를 통해 이슈가 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러면서 사건 자체보다 사람들이 그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그것은 또 다른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며 세기를 장식할 역사적인
사건이 되기도 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요시다
슈이치는 그의 최신작 <분노>를 통해 특정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심과 제보들이 어떤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 내는지 그 영향력은
어떻게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 그로 인한 사람들 간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일본에서 실제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썼다고 한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큰 맥은 그렇게 잡혔고 그것을 통해 각기 다른 세 인물 집단이 겪게 되는 상황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하치오지 교외에서 처참하게 살해된
부부의 시신이 발견된다. 찌는듯한 무더위가 한창인 그때 벌어진 이 사건은 피해자들의 피로 쓴 듯한 '분노'라는 말과 함께 오리무중으로 빠진다.
살인 용의자는 경찰의 포위망을 교묘히 피해 가며 1년 넘게 도피 행각을 계속해오고 있다. 경찰의 끈질긴 수사에도 불구하고 단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 찰나, 용의자를 봤다는 제보는 계속해서 들어오고 급기야 용의자에게 성형 수술을 해줬다는 의사의 제보까지 들어온다. 그로 인해
새로운 용의자의 몽타주가 만들어지고 그를 통해 수사는 조금씩 진전을 보인다. 한편, 바닷가에서 얼마 전까지 가출해서 성인업소에 반강제로
붙잡혀있던 딸 아이코와 그녀의 아버지 요헤이, 그들에게 다시로라는 외지의 한 남자가 그들 부녀의 인생에 들어온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딸을 진정 사랑해주는 남자지만 그에게는 감춰진 비밀이 있다. 도쿄의 한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유마는 단골로 찾는 게이 사우나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난다. 그의 이름은 나오토. 자신의 취향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그에게 끌리게 되고 그 둘은 유마의 집에서 같이 살아가게 된다. 엄마의
외도로 인해 잦은 이사를 다녀야 했던 이즈미, 이번에도 어김없이 밤에 몰래 도망 이사를 준비 중이다. 이번에는 오키나와의 외딴 섬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보트를 타고 들어가는 별섬에서 혼자 외로이 숙박을 하고 있는 낯선 남자 다나카를 만난다. 아이코와 요헤이, 유마 그리고 이즈미는 각기
다른 한 남자를 만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석연치 않은 공통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하치오지 부부 살인사건 용의자와 인상착의가 엇비슷하다는
점이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그들은 모두 동일인물인가. 점점이 드러나는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형사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각기 펼쳐진다. 그러면서도 세 개의 각 이야기는 어딘지 모를 닮은 구석이 있다. 다른
이야기임에도 같은 이야기인 듯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각각의 이야기가 하나의 큰 사건으로 엮여져 있기 때문인듯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인물들이 그 사건과 자꾸만 엮이는듯하다. 각기 다른 인물들과 이야기를 통해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추적하는 스릴러 소설인 줄 알았는데
사실 <분노>라는 소설을 그렇지 않다. 소설의 결말에 다다를수록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희망이라는 빛을 찾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한국 독자들에게 띄워보낸 인사말의 의미를 알 수 있을 듯하다. 요시다 슈이치의 <분노>는 외부로부터 나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믿고 지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