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인문학 2 - 섬뜩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언캐니의 세계 이미지 인문학 2
진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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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와 문화가 텍스트 중심의 문화였다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이미지 중심이 될 것이다.
글자를 모르는 자가 아니라 이미지를 못 읽는 자가 미래의 문맹자가 될 것이다.
'이미지 인문학'이라는 큰 화두로 앞서 발표했던 1권과 이번에 새롭게 발표한 2권의 모토를 이루고 있는 저자의 말이다. 전작에서는 오늘날의 사회 문화가 텍스트 중심에서 어떻게 이미지 중심으로 변화가 되었고 그 변화의 중심에 '디지털'이라는 매개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다루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숨은 뜻을 헤아려 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후속편인 2권에서 저자가 들려주는 이미지 인문학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진다. 2권에서는 디지털 이미지의 세계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언캐니' 미학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다. '언캐니(Uncanny)는 독일어 '운하임리히(Unheimlich)의 역어로, 심리학자 에른스트 옌치가 도입한 개념으로 '살아있는 듯한 존재가 정말로 살아 있는지, 혹은 그 반대로 생명 없는 대상이 실은 살아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운 상태'로 정의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언캐니는 '섬뜩함'을 의미한다.

 


디지털 이미지가 '섬뜩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진을 예로 들어보자. 과거에는 지금처럼 컴퓨터를 통한 사진의 왜곡현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진은 곧 역사적 사실을 의미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진은 디지털 기술로 인해 역사적 사실을 사실이 아닌 사건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또한, 존재하지 않는 사실을 존재하도록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이미지 합성과 CG를 통해서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어릴적 읽던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반인반수들을 기억하는가. 브라질의 작가 밀턴 몬테네그로는 그의 연작 <성운>에서 그리스 신화를 생생한 사진으로 되살려내기도 했다. 현실에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신화 속 인문들이지만 디지털 이미지 속에서 그들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게 살아 숨쉬고 있는 듯 하다. 피사체로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을 피사체로 제시하는 것이 디지털 사진의 중요한 특징이다.

 


20세기 예술을 주도한 것이 사진과 영화의 미학이었다면, 21세기를 주도하는 것은 컴퓨터그래픽의 미학이 될 것이다.
디지털 가상에서 언캐니는 혐오스러워 '은민할 욕망'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너무 아름다워서 '노골적 선망'의 대상이 된다.
앞으로 다가올 가까운 미래에 디지털은 더이상 현실과 동떨어진 가상 세계가 아니다. 현실 그 이상의 초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존재하는 현 세계의 모의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신 세계의 창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디지털 가상은 그 자체가 새로운 실재가 될 것이다. 현실과 디지털 가상을 구분지을 수 없는 미래에 이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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