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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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두 분의 할머니가 계시다. 한 분은 몇 해 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셨고 다른 한 분은 애석하게도 손자를 알아보지 못하신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지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어머니를 대신해 우리를 보살펴 주셨던 할머니. 언제나 정정하실 것만 같았던 할머니. 새삼 느낀다. 세월의 힘은 어쩔 수가 없음을. 야속하지만 어쩔 수 없음에 체념하게 된다. 더불어 그 속에서 나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생각해보면 할머니를 주제로 한 소설을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찾아보기 힘들다. 아. 하나 있긴 있구나. 방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났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하나가 생각나니 물꼬가 트인 마냥 계속해서 생각난다. 소설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도 꽤 많다. 그런데 할머니란 인격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왠지 이 소설은 미래의 할머니가 될 존재인 우리의 이야기처럼, 지금의 젊은 내가 할머니가 되어 있을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6명의 작가가 모여 각양 각색의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결국엔 할머니라는 한 사람으로서의 인격체에 대한 이야기다.


6개의 작품이 모두 좋지만 개인적으론 그중에서 <어제 꾼 꿈>과 <아리아드네 정원>이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던 것 같다. <어제 꾼 꿈>속의 할머니는 전형적인 오늘날의 할머니의 모습이다. 남편은 먼저 가고 성인이 된 자녀들은 모두 독립하여 홀로 지내는 어쩌면 지금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이다. <아리아드네 정원>은 미래 사회에 살고 있는 할머니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면서도 미래에 할머니가 되어 있을 나의 모습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소설은 출산 저하로 인한 인구감소를 다문화 다민족을 사회에 받아들임으로써 변하게 된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리면서 그 속에서 나이 든 노인의 일상이 어떤지 보여주고 있다. 아. 이것이 미래의 내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할머니란 존재는 어릴 적 우리에게는 어쩌면 부모보다 절대적인 존재다. 부모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할머니. 언제나 내 편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지원권이다. 그런 할머니의 존재감은 나의 성장과 함께 점점 작아진다. 그러다 거의 잊힌 존재가 되다시피 한다. 쓸쓸하다. 그리고 한편으론 무섭다. 이제는 내게도 점점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바보 같은 억측일까. 할머니가 되어 있을 미래는 <아리아드네 정원>과는 다를까.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일상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다.


이 책에 담긴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따뜻한 존재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일이다. 또한 가까운 미래에 그와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를 나를 먼저 만나는 시간이다. 미래의 나의 모습은 현재의 내가 만들어 나가는 일이라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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