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 반의 아이들
솽쉐타오 지음, 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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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시간을 거슬러 중학교 2학년으로 돌아간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하면서 모두가 조금씩 낯설어 하는 그때 서슴지 않고 먼저 말을 걸어주던 한 친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특별한 아이였던 것 같다. 공부에는 큰 관심은 없어 보였던 그였지만 유독 영화에 관한 것이라면 말리지 않는 이상 끝도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녀석이었다. 특히 그는 홍콩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다. 사실 그때 그 시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홍콩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었다. 홍콩 느와르 영화가 갖고 있는 매력이란 마니아들에게는 여전하다. 그렇게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그 친구의 영향으로 나 또한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면 10번, 20번을 보고 또 보는 습관 같은 취미는 그때부터 생긴 듯하다.


솽쉐타오. 중국의 신예 작가 중 한 명이다. 작가가 되기 전 그는 대학에서 법학과를 졸업하고 은행에서 일하는 평범한 은행원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파트 계약금을 내기 위한 목적으로 응모했던 공모전에 당선되며 문단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작가로 밥을 먹고 살고 싶다.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끝내주는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로부터 불과 5년 만에 2012년 '타이베이 문학상'을 시작으로 2014년 '백화 문학상', 2017년 '왕쩡치 중국어 소설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야말로 중국 문단을 대표하는 신예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혀 나가고 있다. 이 책은 그에게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을 비롯하여 그간 써온 단편들을 한데 묶어 놓은 소설집이다.


소설집의 첫 장을 여는 이야기는 <9천 반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이다. 이야기는 90년대 말 중국 둥베이 지역의 조금은 특별했던 교육 제도를 배경으로 중학교에 입학한 두 주인공의 조금은 특별한 학창 시절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학교는 특이하게도 고등학교나 대학교 입학시험과 달리 시험에서 1등을 하더라도 별도로 9000위안의 내야 입학이 가능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 학교를 '9천 반'이라 불렀다. 그 당시 9000위안은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 학교에 입학하려고 기를 썼다. 그 와중에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끌어모은 돈으로 입학한 주인공 리모와 안더례. 두 주인공의 만남은 특별했다.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던 안더례는 교탁 앞으로 불려 나온다. 담임 선생님의 훈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논리 정연함으로 선생님을 당황하게 만들어버린다. 결국 안더례는 제일 뒤쪽 구석자리로 쫓겨나고 만다. 리모에게는 같은 반에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였는지 그녀가 알지 못하게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하여 그녀의 책상을 정리해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처럼 아침 일찍 등교한 그때 생각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 일로 인해 리모는 안더례의 짝꿍이 되어버렸고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소설집에는 총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나름의 주제와 메시지가 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을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이 책의 제목과 똑같은 <9천 반의 아이들>을 꼽고 싶다. 그 이유는 앞서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것처럼 작품을 읽으면서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고 두 주인공 특히 안더례의 모습에서 그때 그 시절 사회와 교육 제도의 부조리함을 빗대는 해학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단연 안더례의 국기 게양대의 연설이다. 우리로 치자면 국민학교 시절 조례 시간에 학생 대표로 연단에 서는 일이다. 보통의 아이들의 연설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찬양 일색이었다면 안더례는 그렇지 않았다.


게양대에 오른 그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가 마이크를 손에 들고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이 모두 완벽하게 입을 다문 후에야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오늘 제 연설 제목은 '내 마음속의 조국'입니다. 이어 한껏 숨을 들이쉰 후 마치 다른 사람이나 된 양, 지휘자처럼 한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혁명의 폭풍우 난징을 뒤흔들어, 100만 해방군 창장강을 넘으니, 웅장하고 험한 산세에 오늘의 기운 더해져, 세상 변화에 감개무량하네. 인생은 쉬 늙지만 하늘은 항상 푸르고, 전쟁터의 황화 유난히 향기롭도다……. 이어 돌고래의 호흡 체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정 전체에 우레와 같은 웃음소리,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뿐만 아니라 안더례의 격려와 도움으로 리모는 시험에서 1등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싱가포르에 유학생으로 갈 기회가 생기지만 담임 선생님의 교묘함으로 그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리모는 억울하지만 일개 학생 신분으로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안주하고 말지만 안더례는 대자보를 통해 교내에 공론화 시킨다. 하지만 아쉽게도 결국 리모는 싱가포르 유학생이 될 수 없었다.


작품을 읽고 난 후 두 주인공의 학창 시절과 그 이후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작금의 현대 사회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소설 속 학교가 각종 제도로 점철된 사회를 대변한다면 생활화는 주인공은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그 안에서 한 명은 현실에 안주하고 틀에 맞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반면 다른 한 명은 틀을 벗어나 열린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요즘 사회에서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미래 지향적인 열린 사고를 갖고 있는 안더례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면서 그를 우리와 다른 생각을 하는 다른 존재로 여긴다. 소외시킨다. 만약 안더례가 그를 진짜 알아봐 주는 환경에 살았다고 가정한다면 어땠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소설의 엔딩은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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