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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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작은 나라에 불과한 대한민국. 그러나 그 작은 땅덩어리에 기록된 역사는 수많은 해석을 낳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도 논란의 여지가 되고 있는 것은 몇백 년 전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건너가 그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르네상스 문화에 영향을 끼친 조선인에 대한 이야기다. 이는 우리에겐 <베니스의 개성상인>이라는 소설과 17세기 화가 루벤스가 그린 '한복 입은 남자'로 더 익숙한 내용이다. 2018년만 네덜란드의 한 교수에 의해 소설과 그림 속 주인공이 조선인이 아닌 명나라 상인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많은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바탕으로 많은 이야기가 재탄생 하였는데 이 작품 <최후의 만찬> 또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역사 소설에서는 맛볼 수 없는 기대감을 갖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와 더불어 천재라 불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최고의 화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작품까지 소재로 얽히고설켰다는 것은 작품의 스케일이 어느 정도 일지 짐작게 하기에 충분하다.


신해년. 때는 뒤주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했던 사도세자의 아들이 왕위에 즉위한지 15년이 되던 해다. 전라도 진산군의 두 선비가 붙잡혀 갖은 고문을 당한 채 결국 죽임을 당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조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유교 사상을 배척하는 신주를 불사르고 천주를 모시며 제례를 지냈기 때문이었다. 조선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이 사건을 시작으로 왕의 뜻과는 다르게 조정의 권력을 쥐고 있던 노론은 공서파를 앞세워 서학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왕의 절대 신임을 받고 있는 정약용은 순교의 삶을 살다간 두 선비와 마찬가지로 서학인으로서 삶과 시대적 현실의 삶 가운데 갈등한다. 그 무렵 민간에서는 여령이라는 아녀자가 천주 신자로 고문을 받는 도중 죽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어린 자식들 중 오라비는 서학인 가족의 죽음으로 복수를 꿈꾸는 초라니패에 합류하게 되고 불을 다루는 특별한 힘을 지닌 어린 누이는 정약용에 눈에 띄어 장악원의 대금 악사로 발을 들이게 된다. 한편 정조는 앞서 처형당한 두 선비의 집에서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다는 '최후의 만찬'을 발견함과 동시에 도화서 별제 김홍도로 하여금 그림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을 밝혀낼 것을 명하는데.. 과연 이들 앞에 놓인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작품을 읽는 내내 그간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과 소설이 만들어낸 허구를 판가름 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만큼 작가는 이 작품에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을 재료 삼아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기가 막힌 요리를 만들어 내었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그 맛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듯이 문장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기들에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베니스의 개성상인', '한복 입은 남자', '장영실', '르네상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오래전 읽었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낱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와 더불어 새롭게 '예수와 그의 제자들', '최후의 만찬'이 합해졌다.


역사 소설이 갖는 매력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기록으로만 간직해오는 역사의 한 장면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키는 것 말이다. 과연 그 누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조선의 역사를 컬래버레이션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작품은 그렇게 환상적인 캐미로 빚어진 결과물인 것이다. 근래 보기 힘든 역작을 만난 것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이 주는 묵직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지닌 모순과 대립의 단면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문제 해결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역사는 미래를 여는 열쇠라고 하지 않았던가. 소설 속 정약용의 고민 속에서, 초라니 패거리의 혈투 속에서,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고 헤쳐나가려는 정조와 김홍도의 발걸음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소설을 단순히 허구가 곁들여진 이야기로 치부해서는 이유는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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