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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의학이 발전됨과 동시에 인가의 수명 또한 연장된다. 연장된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문명이 발전하고 의학 기술이 발전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생명은 촛불과 같다. 심지가 다 타들어간 촛불은 언젠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다만, 모두가 그렇게 모든 생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촛불을 훅 불어버리면 그 자리에서 생명의 불꽃이 사라지듯이 인간의 생명 또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과거부터 21세기 현재까지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은 단 하나다. 여전히 이것은 다른 무엇보다 강렬하다. 돈? 명예? 권력? 아니다.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당장 내일 죽게 된다면 아무 쓸모없는 것들에 불과할 텐데. 그렇다. 옛 진나라 시황제가 그토록 원했던 불로불사. 영생. 영원한 생명. 이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와 명예를 그토록 원하는 이유는 영생을 대신 대리만족을 하기 위함은 아닐까 생각된다. 사는 동안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다.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보고 싶은 마음은 사회적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다.
만약 당신의 삶이 무한하다면 어떨까. 남들과 마찬가지로 태어나서 늙어 죽을 때까지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 그런데 다시 태어났다. 부활? 아니다. 환생(還生)이다. 부활은 죽었던 그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고 환생은 말 그대로 되살아 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 육체는 말 그대로 재생이지만 정신은 이전의 삶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상해보라. 일 평생 살아온 내 삶의 기억을 온전히 간직한 채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니. 처음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면 미치지 않고선 못 배기리라. 역시나 이 소설의 주인공도 그렇게 두 번째 삶을 미쳐버린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무한한 삶이 내게 주어졌다면 나는 행복하다고 느낄까? 아니면 불행한 저주에 걸렸다고 생각할까? 사실 이것이 영생이 갖는 맹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고 똑같은 삶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면 그만큼 멋지고 재미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소설 속 주인공처럼 부모에게 버림받고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살다 죽었다면 그다음 생에선 180도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부와 명예는 물론 권력까지 두 손에 쥘 수 있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처럼 환생 능력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들을 볼 때 결코 유익하지 많은 않아 보인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자기 존재 이유를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환생하는 이들에게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왜 내가 보통의 다른 인간처럼 생이 끝나지 않고 생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일까. 존재 이유를 모르는 삶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소설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다.
미래를 아는 자가 가장 먼저 하려고 하는 일이 무얼까. 역사를 뒤바꾸는 일이다. 가난한 사람은 과거로 돌아가 자기 자신에게 큰 부를 얻게 해주려고 할 것이고, 정의로운 사람은 히틀러와 같은 전쟁광을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만들려고 할지 모른다. 이제껏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다뤄졌듯이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그 대립에서 오는 긴장감은 사뭇 다르다. 아마도 이 소설이 세계 3대 SF 문학상으로 일컬어지는 존 캠벨 기념상을 수상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영화화되었을 때 영상으로 보일 모습이 기대된다.
15번을 반복하는 해리 오거스트의 삶이 여전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반복된다. 평범한 삶이 삶이 거듭될수록 점점 극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책 속으로 빨려 들게 한다. 더불어 주인공이 반복하는 삶이 유기적으로 엮이게 된다는 점. 어쩌면 해리의 반복되는 삶 자체가 그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불과 29살에 불과한 작가가 다음에 또 어떤 필력으로 전 세계인의 가슴을 흔들어 놓을 소설을 내놓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때는 어떤 필명으로 아무도 모르게 다가올는지 알아맞혀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