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卍).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 (무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춘미.이호철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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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미주의라는 것이 '미'를 최고의 가치로 하는 것은 알겠으나 그래서 그게 어떤 것이냐고 하면 선뜻 답하기가 애매하다. 미를 추구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모든 예술의 공통분모가 아닌가. 그렇다면 탐미주의는 단순히 공통으로 삼는 정도를 벗어나, 극으로 치닫는 궁극의 영역이라고 봐야 할까. 다니자키 준이치로를 치면 바로 따라오는 것이 '탐미주의'이다. 소설이 다른 목적에 눈 돌리지 않고 오직 '미'만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탐미주의야말로 오직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미'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근본 욕망이므로 진짜 인간을 위한 예술이라고 불러도 될까. 작품에 작가의 신념이나 사회적 인식은 전혀 배제하고 오직 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마뜩지 않지만 매력적이다.  


주인공 소노코가 선생님(작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형식의 소설이다. 그녀는 따분한 생활에 활력을 주고자 여자기예학교에서 미술을 배우기로 한다. 하루는 모델을 세우고 관음보살을 그리는데 교장이 와서 아무래도 소노코 씨의 그림은 모델을 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한다. 별 이상한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평소 흠모하던 옆반의 미쓰코를 떠올리던 소노코는 한번 더 그 소리를 교장에게 듣자 기분이 확 상해서 교장에게 따진다. 학교 내에서는 소노코와 미쓰코의 동성애를 의심하는 소문들이 있었고, 오히려 이 일을 계기로 둘은 실제로 친해진다. 둘의 관계는 처음에 괜찮다고 하던 남편의 의심까지 받는 상황에 이르러, 어느 날 미쓰코가 오사카의 어느 집에서 옷을 도둑맞았다며 옷을 가져다 달라고 전화를 한다. 오직 자신만을 향해 있을 것이라 믿었던 미쓰코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소노코는 미쓰코와 연락을 끊고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이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다시 미쓰코를 향한 사랑을 눈을 뜨고, 또 하나의 인물 미쓰코의 남자친구 와타누키가 등장한다. 소설은 이 둘의 미쓰코를 향한 사랑과 욕망을 중심으로 각각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계속 뒤바뀌면서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가서는 소노코의 남편까지 가세하면서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이 소설이 세계문학으로 고전 형식으로 출판되었고, 탐미주의니 유미주의니 하는 이미지를 업고 있어서 소설이 꽤 추상적이고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은 근래 읽은 책 중에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특히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덤불 숲(라쇼몽)'의 구성처럼 등장인물이 말을 할 때마다 관점이 바뀌고 스토리가 달라지는 점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한다. 첫 번째 화자가 이야기 할 때 이야기를 독자가 믿고 있으면, 두 번째 화자가 나타나 사실 그 사건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앞의 이야기를 완전히 뒤집는다. 이것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 이야기들이 모두 하나의 완벽한 '미'의 존재, 미쓰코를 중심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장 객관적일 수 없는 때는 감정에 휘둘릴 때이고, 감정에 휘둘리는 것 중에서도 사랑에 빠졌을 때 거의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다. 미쓰코의 말을 완전히 믿어야 하는 지 마는지도 모르는 채 흔들리는 소노코를 중심으로, 미쓰코의 남자친구이면서 성불구자인 와타누키, 미쓰코의 남편까지. 등장인물들은 오직 하나의 절대적인 '미', 미쓰코를 향한 욕망을 가지고 파멸을 향해 달려간다. 그들이 하나의 욕망을 좇는 동안 끝없는 의심과 경쟁자에 대한 증오 때문에 스스로 인간의 바닥을 드러낸다. 우리가 오직 하나의 절대적인 것을 소유하려 한다면 인간은 한편으론 그만큼 성장하면서도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고 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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