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은 피할 수 없다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화의 소설은 등장인물들을 바닥까지 끌어내린다. 이제 좀 그만좀 불행하고 조금이라도 행복했으면 하는 독자의 기대에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가서 등장인물들이 더 안쓰러워지는 이유는 그들이 '슬픔을 슬픔'으로, '운명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모든 욕심을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 제목은 처음부터 재앙이다. '재앙은 피할 수 없다'라니, 읽기 전에 단단히 맘의 준비를 해야될듯 싶다.


징조


소설은 첫 장면부터 운명의 암시를 보여준다. 늙은 중의사가 둥산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만 알았다면 둥산은 '운명이 암시한 불행'을 눈치 챘을까. 둥산은 거대한 여인 '루주'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둘은 머지않아 결혼을 하게된다. 하지만, 루주에 비하자면 지나치게 완벽한 둥산은 그 때문에 비참한 운명을 맞아야 할 처지가 된다. 


그러나 독기를 품은 안개가 그물처럼 가로막고 있어서 둥산의 눈은 그들의 사랑이 부침으로 가득하리라는 걸 보지 못했다. (p.158)


둥산의 결혼식장에서는 또하나의 불행한 운명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결혼식 장면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는 썬린은, 광포와 차이뎨의 애정 행각을 훔쳐보고 있는 남자아이에서 '죽음의 아름다운 홍조'를 느낀다. 그리고 먹이사슬처럼 차이뎨는 광포의 몸에서 풍기는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 광포는 살인에 관한 세줄짜리 기사에서 첫번째 암시를, 다리아래로 지나가는 작은 배에서 두번째 암시를, 나뭇잎이 천천히 떨어지면서 세번째 암시를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남자아이의 눈빛을 보며 암시를 느꼈다. 마지막으로 법정에 선 광포는 차이뎨의 눈빛에서 자살의 암시를 본다.  


재앙은 피할 수 있을까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불운한 징조를 지나친다. 그들이 그것을 지나치게 된 이유는 바로 다른 것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욕정이든, 욕망이든 그들은 그 때문에 징조를 놓친다. 작가는 그들이 열정때문에 이성을 놓치고 만다고 이야기 하는 듯 하다. 하지만, 그러한 운명의 암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 알았더라면 그들은 그 운명을 피할 수 있었을까. 


하인리히의 법칙이란 게 있다. 보험회사 관리자인 하인리히가 정리한 것으로 1:29:300으로 정리되는 사고의 법칙이다. 1번의 대형사고가 있기 전에 무려 29번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으며, 300번의 이상징후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인리히의 말처럼 300번, 아니 29번의 경미한 사고에서 그것을 깨달았다면 그들은 그것을 피했을까. 위화는 여기에 단호하다. 제목부터 단호하지 않은가. 재앙은 피할 수 없다.


우발성의 수긍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위화의 등장인물들은 거대한 운명의 파도를 헤처나가는 이들이 아니다. 의지박약이 아니라 운명의 물결이 너무 거세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돛단배에라도 몸을 맡기거나 아니면 뗏목이라도 부여잡던지, 그도 안된다면 통나무라도 끌어 안고 바다가 잠잠해지길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서양의 철학이 '이성'과 '논리'를 밝히고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 하면서도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발성'이다. 동양 철학의 전제가 되는 '진인사 대천명'의 지혜가 없는 것이다. 인간의 능력이 최고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운명의 힘에 좌절하고 만다. 삶의 지혜는 인간으로서 할 것을 다 하고 난 후에 다가오는 '운명'에 대해서는 의연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