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 접촉에 관한 짧은 회상
정송희 지음 / 새만화책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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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스크린톤 한 조각 쓰이지 않은, 굵은 선과 가는 펜선만으로, 먹색과 흰색만으로 이루어진 이 만화는 현실의 신체와 접촉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의 신체이거나 타인의 신체일 수도 있다. 기분좋은 접촉일 수도 있고, 부적절한 접촉이기도 하다. 연인과의 관계이며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이기도 하다. 정도와 영향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한번쯤 겪어봤을 경험들, 하지만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던 감정들을 내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므로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갖는 찜찜한 기분은 쉽게 털어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비밀이 타인에 의해 공개돼 버린 듯한 당혹스러움,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던 것들을 굳이 끄집어 내 조각을 맞춰 놓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그저 하나의 이야기이기보다는 좀더 본질에 가까이 가서 읽는 이가 자기 정체성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은밀함은 관계 맺는 사람들 간의 진솔한 대화로 교류되어야 한다'고. 사실 '당신들이 그렇게 숨기려던 것, 사실은 별것 아닌 것들'이라고. 그래, 그런 것쯤 별것 아니다. 콘돔으로 풍선을 부는 아이가 큰 비밀을 알아버린 것도 아니고 살찐 누드모델은 중세에 가면 미인 대열에 설 수 있을 것이며 인절미처럼 늘어진 뱃살을 기꺼이 정겨운 눈으로 봐주는 사람이 분명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말로 형상화된 드러난 비밀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며 새로운 관계의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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