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백수 6
하스코다 지로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세간의 평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에 대해 반기를 들기란 무척이나 힘들다. 그 반기를 잘 들면 색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요, 어설피 들었다가는 욕먹기 십상이다. 헌데 만화 중에는 극과 극을 달리는 평을 지닌 것들이 종종 있다. <물장구치는 금붕어>나 <카오루의 일기>, <바이크~맨>, <렛츠고!! 이나중 탁구부>나 <그린힐>, <가출고딩들>, <멋지다! 마사루>, <삐리리~ 불어봐! 재규어> 등등 소위 '엽기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만화들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만화들에 왕창 다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은데 이유는 '아이디어'와 '뎃생력'이다. 미네타로 모치츠키나 후루야 미노루 등의 작가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그들 나름의 장르를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뎃생력 또한 우리나라의 가로세로 선 몇 줄로 배경을 끝내버리는 학원물들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아무튼 이러한 선상에 있는 작품이 <행복한 백수>인데 위의 작품들과는 약간 다른 점이 있다. 다루어지는 에피소드가 하나 끝날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는 점이다. 물론 벌거벗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벌레를 잡으며 하루를 보내고 윗집아줌마를 겁탈하려고 하는 '이상한' 남자와, 어쩌다 결혼해서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착한' 아내가 다소(또는 심하게) 이상해 보이지만 읽어갈수록 그 둘의 관계가 단순하게 상식의 잣대로만은 재단할 수 없는 또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권의 에피소드 '해피박스'에서 백수 주인공은 아내 몰래 생활비를 훔치려다 신혼 때 함께 만들었던 해피박스를 발견한다. 그것은 함께 살면서 행복을 느낄 때마다 메모를 해 두고 둘 중에 누군가가 죽기 전까지 개봉하지 않기로 한 상자로, 남자는 그 속에 가재를 키우다가 갖다버린 지 옛날이었다. 남자는 아내의 해피박스가 텅텅비었다고 아내에게 친정으로 가버리라고 소리치고 착한 아내는 조용히 나간다. 남아 있던 남자는 자신이 보았던 것이 예전 자신이 버렸던 것을 아내가 다시 가져와 닦아 놓은 것임을 알고, 아내의 진짜 해피박스를 찾아낸다. 거기에는 쪽지가 수북하게 들어있었는데 '그 사람이 민들레를 꺾어주었다. 행복했다' '그 사람이 돌아오는 게 늦어서 걱정했는데 무사히 돌아와서 행복했다' '그 사람이 내 손이 튼 걸 걱정해 주었다. 행복했다' '그 사람과 함께 산보했다. 돌아오는 길에 그 사람을 업어주느라 피곤했지만 행복했다' 남자는 울음을 터뜨리고 자신의 이끼 낀 해피박스에 '사나에의 해피박스가 가득 차 있다. 나는 무척 행복했다'라는 쪽지를 넣는다... 또다른 에피소드 '아내의 잠꼬대'에서는 상식의 틀에 묶여 좁은 세상만을 보는 아내에게 남편은 하룻동안 아내를 쉬게 하고 석양을 선물하기도 한다... 이쯤이면 저 백수는 더이상 기생충 같은 '변태 벌거숭이'가 아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거나 잡지에 나온 레스토랑을 찾아다닐 수는 없다. 반대로 돈 벌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홈리스가 되지는 않는다. <행복한 백수>의 주인공처럼 사회부적응자(?)이지만 화초에 붙어 있는 벌레에 이름을 지어주고 잘못 받아온 사은품을 돌려줘야 된다고 우기는 사람도 행복을 '느낄'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에서 말하는 '치기 힘든 공을 치거나, 잡기 힘든 공을 잡기 위해 똥줄을 태우지 않는' 또다른 삶의 가치매김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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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28 1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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