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단순하게'를 삶의 지표로 삼고 있지만, 거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월급쟁이에게는 이루기 힘든 꿈이 아닐 수 없다. 독서가 중요한 까닭은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사유를 만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다른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다른 일'은 우리가 그 일의 주인이 아닐 때가 많다. 나 자신을 위한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녹차를 달여 마시는 것도 그렇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녹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이 도시 문명이 요구하는 잡다한 업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걷기가 그런 것처럼, 휴대 전화 전원을 꺼 놓는 것이 그런 것처럼, 녹차 마시기는 자발적 망명이다.
-마지막 장, 녹차 마시기 中에서 -2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