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밀란 파스타 - 이탈리아에서 요리하는 셰프의 정통 파스타 레시피 김밀란 레시피
김밀란 지음 / 다산라이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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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판 토마토소스에 면만 넣어 만드는 파스타도, 왜 내가 하면 맛이 없을까? 파스타, 라면 끓이기만큼 쉽다!라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는 뭐가 문제일까. 파스타뿐이랴. 실은 라면도 그다지 맛있게 끓이지 못한다. 먹는 건 기똥차게 잘 먹는데, 만드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울까. 그런 생각을 하던 어느 날 다산북스에서 #김밀란파스타 서평단 모집 글을 보았다. '그 어떤 요리보다 쉽고 간편하게'라는 문구에 홀려 서평단 신청을 하였고, 서평단에 선정이 되었고, 그렇게 받아 쥔 책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를 절망시켰다. 결코 쉽고 간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상정한 독자는 적어도 시판 파스타 소스로도 맛없는 국수 요리를 (... 그렇다. 그것은 파스타라고 할 수 없는 요리이다! 아니 요리라고도 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만드는 나는 아니었던 것이다. 책을 받고 소개된 파스타를 집에서 한 번 만들어 먹어볼까, 했으나 조리도구 파트에 이미 기가 질려버려서 선뜻 뭐 하나 시도해 보지 못했다. 결국 한 해의 마지막 날, 퇴근을 한 뒤 집에 있는 재료들로 할 수 있는 알리오 올리오에 도전해 보았다.


요리는 물론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숫자로 정확히 제시되지 않은 모든 부분에서 아마 나는 잘못된 선택을 했을 것이다. 몇 초 후 바로라곤 하지만 그렇다고 김밀란 선생님이 생마늘인 채로 불을 끄라고 하시진 않았을 텐데 내가 만든 알리오 올리오 속의 마늘 알알이 그렇게 아삭아삭할 수가 없었고, 면수를 조금씩,이라고 했다고 정말로 조금씩 넣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소스가 끈적하고 되직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았을 테고. 요리 못하는 애들이 그렇더라고. 조금씩 조금씩 하라는 데로 안 해서 결국 모든 것이 잘못되고 마는 것이지...


그렇다고 이 책이 요리 무지렁이에게 전혀 필요 없는 책이었냐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글로 읽는 '요리 경험'은 요리를 먹는데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건 파스타와 생 파스타는 어떻게 다른지, 생 파스타와 뇨끼는 어떻게 만드는지, 파스타 브랜드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덴떼는 뭔지, 만테까레는 뭔지.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을 글로 만나본 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서 먹는 파스타와 뇨끼 요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알고 나니 좀 더 식사시간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평소 요리, 파스타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이라면 더욱 즐겁게 볼 수 있었을 책, 그러나 나같은 무지렁이도 음식과 관련된 지식과 에피소드를 즐겁게 읽어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먹는 즐거움을 아는 자는, 결국엔 만들게 될 것이다. 나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비장함) 이 책에 소개된 요리 중 관심 가는 요리가 많았다. 특히 감자를 좋아해서 감자 뇨끼, 감자 디딸리니가 무척 먹어보고 싶었다. 라구로 속을 채운 리가토니 그라탕은 사진 속 음식이 정말 먹음직해 보여서 꼭 해 먹어 보아야지,라고 다짐했다. 또 된장이나 고추장을 사용한 K-파스타도 소개되어 있어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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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고 고른 말 - 카피라이터·만화가·시인 홍인혜의 언어생활
홍인혜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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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님의 '루나파크' 웹툰을 언제부터 알게 되었더라. 대학교 졸업반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이가 같아서 더 공감을 하며 사랑했던 웹툰이었다. 광고 회사에 다니다 퇴사를 하고 영국으로 떠났다가, 갑자기 시인으로 등단하기까지 한 작가님의 지난 십여 년을 함께 지켜보아오다 보니 괜히 막 친구 같고, (틀려) 정이 갔다. 시인이 된 루나, 홍인혜님의 에세이집이 나왔다. 시인이 된 카피라이터가 '고르고, 고른 말'에 대한 이야기라니,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창비 스위치에서 서평단 모집하는 것을 보고 냉큼 신청해 보았는데, 나의 오랜 팬심을 눈치 채주셨던 걸까, 운 좋게 서평단에 뽑혀 책을 배송받았다.

마음의 풍경을 포착한 말, 영혼의 각도를 바꾼 말, 누군가의 온기가 필요할 때 서로에게 건네는 말, 카피라이터로서 '일'하며 건져올린 말, 그리고 꽉 닫힌 세상에 똑똑, 노크하여 문을 열게 만드는 말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나는 특히 2부의 <우리가 말을 섞을 때>의 이야기들이 좋았다. 온기가 가득 담긴 다정한 말, 사랑이 가득 담긴 다정한 말. 서로를 무너지지 않게 다독여주고, 버티게 만들어 주는 말들이 좋았다. 가장 좋았던 꼭지는 <우리는 모두 입체다>. 항상 자주,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를 함부로 단정 짓고 싶어질 때 안돼, 그러지 마! 하고 브레이크를 잡으며 머릿속에 휘몰아치던 생각들을 작가님의 정돈된 문장으로 만나니 그래, 맞아, 이거야. 하며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하지만 우리가 타인을 인식할 때는 어떤가.

나를 대할 때의 풍부한 사유와 도량은 남 앞에서 인색해진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납작하고 또 납작하다.

인간이라는 다층적인 존재는 '나'라는 필터를 거쳐 삽시간에 밋밋해진다.

표정이 어두운 친구는 그저 툭하면 우울한 애가 되고,

종종 지각하는 동료는 마냥 게으른 사람이 되고,

늘 즐거워 보이는 동창은 생각 없이 밝은 녀석으로 일축된다.

나를 설명할 때는 많은 서사를 끌고 들어와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타인은 게으르게 헤아린다. 현상만 보고 가볍게 판단하고, 손쉽게 재단한다.


말을 고른다는 것은 입장을 분명히 하고, 태도를 결정하는 일이다. 어떠한 언어로 나의 입장을 표명하고 나의 태도를 보여줄 것인지를 선택할지 정성스럽게 고르고 골라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입장을 제대로 표명하지 않은 관성적인 언어, 내 불온한 태도를 비추는 혐오적인 언어로 자신의 매일을 꾸려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러니까 좀 더 정성스럽게 말을 고르고,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기회를 준 책, <고르고 고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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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에세이&
김현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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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시인님에 이어 김현 시인님의 에세이를 읽었다. 앞서 황정은 작가님의 에세이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며 '소설가가 쓴 에세이'를 좋아한다고 말했었는데 그것은 평범한 일상에서 '반짝이는 이야기'를 건져낼 수 있는 사람의 글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시인의 에세이는 뭐랄까, '반짝이는 이야기'보다는 '단어의 날'을 발견하는 글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자주 쓰이고, 평범하게 쓰이는 단어들을 시인의 감성과 시선으로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익숙한 의미 위에 새로운 의미를 쌓아 더욱 풍성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감각을 갈고닦아 예민하게 만들어주는 시인이 쓴 에세이의 맛을 알게 되었다.


일렁이다는 물에 떠서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움직이는 것을 뜻하는 동사.

마음은 동사,라고 어느 글에 쓴 적 있고. 덧붙이자면 일렁이다는 여름 동사의 일종.

겨울 동사는 속삭이다. 봄의 동사는 어른거리다. 가을의 동사는 흘러가다.

어른거리고 일렁이고 흘러가 속삭이는 마음의 사계절.

동사를 활용해 마음의 사계절을 그려보세요. 그것이 바로 당신을 설명하는 일

p.26


나는 어떤 동사로 나의 사계절을 표현해 볼 수 있을까?를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었던 문장이다. 동사로 계절을 떠올리는 것이 생각보다 참 어려웠다. 비록 그럴싸한 동사의 사계절을 그려내진 못했지만 잠시라도 우리말 단어들을 이것저것 떠올리며 계절과 어울리는 동사를 찾아보려고 애썼던 그 시간이 참 즐거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얼마나 건성으로 단어들을 대했는지도 새삼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란 결국 나를 세우는 마음이며 그 마음만이

어쩌면, 하고 한 사람의 삶을 대신하여 살 수 있는 용기와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모든 사랑은 자기에서 출발해 타인의 경유하고 마침내 우리에게 도착한다는 것을 깨치는 연쇄작용이었다.

P127


이 책에선 이렇게 시인다운 이야기들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생활인으로서의 김현, 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자꾸만 특정 동네의 아파트 시세를 알아보는 이야기가 요즘 나와 너무 똑같아서 한참 웃다가, 사회가 정해놓은 길 밖에 서 있기 때문에 사회가 내어준 기회에 손조차 뻗어볼 수 없는 현실의 불합리함을 문득, 깨닫고 화가 나기도 했다. (물론 나는 작가님의 사정과는 사뭇 다른 '비혼 가구'로서의 입장이지만) 생활 동반자 법과 차별 금지법의 필요를 다시 한번 절감하게 하는 너무 현실의 싸한 쇠의 맛이 느껴졌더랬다. 그러면서도 차별과 혐오에 결코 지지 않겠다는, 지지 않기 위해 끝내 다정해지겠다는 마음이 나에게 와닿았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란 삶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죽음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모든 죽음에 애도를 표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다는 이유로 죽음을 소란스럽게 앓고자 하는 이를 더는 가까이 두고 싶지 않다.

살아 있다는 이유로 고요히 소멸해가는 이와 이제 더욱 가까이 지낸다.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잘 이르고 싶다는 이들의 침묵에 더 마음이 쓰인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두고 수의 대신 입고 싶은 옷을 골라 놓거나

장례식장에서 계속해서 틀어놓고 싶은 음악을 미리 귀띔해 주는 사람을 벗으로 두고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P.142


현실이라는 바닥에 두 발을 착, 붙인 글이라서 좋았던 김현 작가님의 에세이에서 특히 자주 눈에 들어온 단어는 '죽음'이었다. 올해 4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생전 처음으로 '죽음'이 현실로 느껴졌었다. 십 년 전 친한 친구가 떠났을 때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떠났을 때도, 장례의 '주체'가 아니었다 보니 느낄 수 없었던 감정들이 할머니의 장례식 때, 아버지가 안 계셔서 손주인 오빠와 내가 장례의 주체가 되어보니, 갑작스레 몰려왔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습관처럼 '내 꿈은 단명'이라고 외치던 것을 멈추었다. 죽음을 가볍게 여기던 태도를 고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난 단어의 무게를 가벼이 느껴온 것만큼 삶의 무게 또한 가벼이 여겨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인생이라는 일 인분의 그릇을 내 힘으로 채워 왔는가,라는 물음 앞에 자꾸만 작아지는 요즘. 죽음에 잘 이르기 위해 그릇 안에 무엇을 채워나갈지를 잘 생각해 보아 할 때다. 삶의 무게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때다.


다정하기 싫지만 다정한 시인, 김현 작가님의 문장에서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잘 이르고 싶다'라는 이들의 '침묵'을 배웠다. '타인의 얼굴에서 시간을, 시간에 힘입어온 기쁨과 슬픔을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것(p.149)'이 어른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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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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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사랑한다. 섬세하고, 날카롭지만 다정한. 냉정하지만, 뜨거운. 세상의 부당한 일들을 눈 감고 넘어갈 수 없어 결국 디스크와 불면에 시달리며 책상 앞에 앉아 단단한 글을 쓰는 사람을 좋아한다. 소설 속에서 동시대의 폭력, 부당함, 부도덕함에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황정은 작가님의 첫 에세이집이 출간되었다.

파주로 이사했고, 코로나로 인해 외출을 삼가고 있으며, 타인의 애쓰는 삶이 나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생각하며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다가 문득, 창밖으로 보이는 경의중앙선을 바라보며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애쓰고'있음을 생각하는 사람. 나의 '무사'에서 누군가의 '분투'에까지 선을 이어낼 수 있는 부지런하고 다정한 사람. 우리에게 '건강하시기를', 하고 인사해 주는 사람. 원래도 좋아했지만, 에세이를 통해, 그리고 최근에 시작하신 책읽아웃을 통해 조금 더 현실감 있는 모습으로 다가와 주신 작가님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작가님의 글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더 크게 응원하고 싶어졌다.

특히 작가님이 자주 말씀하시는 어떤 '게으름'에 대해 생각한다. 여태 해 온 대로, 자기가 가진 것만큼만 헤아리는 게으른 태도로 내뱉는 어떤 '상투적이라서 해로운 말''에 대해 생각한다. '혐오라는 태도를 선택한 온갖 형태의 게으름'에 대해서도. 차별받았다는 것에 분노할 줄은 알지만 차별한다는 자각은 없는 삶에 대하여. 기어코, 모르겠다는 의지에 대하여. 나는 타인의 삶이 현재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을 헤아릴 줄 모르는 무지와 게으름을 피우지 않아왔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차별을 차별로 치유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가. 깨어있고 싶고, 깨어있었다 말하고 싶지만 나 역시 아주 자주, 인식하지도 못한 채 차별을 하고, 혐오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누가 어떤 이야기를 굳이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하면

그저 그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말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그건 너무 정치적,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을 대개 이런 고백으로 듣는다.

나는 그 일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렇습니까.

P.134

나는 정치적이고 싶다. 가능한 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편이고 싶다. 고민하는 사람이고 싶다. 기어코 모르겠다는 태도보다는 조금이라도 알고 싶다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고 싶다. 게으르게 혐오하기보단 부지런하게 이해하고 싶다. 꽤 멍청하고 꽤 게으른 나에게는 섬세하고 눈 밝은 소설가분들의 글이 꼭 필요하다. 황정은 작가님의 글은, 그래서 나에게, 필요했고,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내 삶은 그 일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 말고도 다른 일들이 내 삶에 있었고 나는 삶과 읽기와 쓰기를 통해 조금씩 학습하면서

본의든 아니든 조금씩 변해왔다.

그 일은 내 전부가 될 수 없다.

P.179-180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가족에게, 친구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상처받고 있을 사람들에게 '그 일은 내 전부가 될 수 없다'라는 단단한 말은 위로가 될 수도, 용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변할 수 있다. 우리는 매 순간 읽고, 쓰고, 보고, 생각한 것들을 통해 변화한다. 그리고 그 어떤 것도 내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까, 아무튼, 계속해 볼 일이다. 황정은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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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이름 - 미술사의 구석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여성 예술가들
권근영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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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에서 지워졌던 여성들의 이름을 찾아 불러보는 책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 이번에 읽은 책은 권근영 기자의 <완전한 이름>이다. 도서관에서 <여자의 도서관>을 빌려온 다음날, <완전한 이름>의 발간에 맞추어 서평단 모집을 하는 게시글을 만난 것은 완전한 우연이었다. 서둘러 서평단을 신청하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고, 운 좋게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비비드 한 컬러를 자랑하는 <여자의 도서관>과 이번에 읽은 책, <완전한 이름>을 함께 놓고 사진을 찍어본다. 단단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는 두 여성의 눈빛이 마음에 든다. 프리들 디커브란다이스, 엘리자베스 키스, 노은님, 정직성, 베르트 모리조, 파울라 모더존베커, 버네사 벨, 천경자, 박영숙, 유딧 레이스터르, 힐마 아프 클린트, 나혜석, 아델라이드 라비유귀아르, 아르테시미아 젠틸레스키. 14명의 여성 예술가들의 이름이 불려졌다.

첫 이야기부터 강렬했다. 프리들 디커브란다이스는 아우슈비츠로 이송된 남편을 따라 아우슈비츠행을 자청, 도착 직후 가스실에서 살해당했는데 그날 테레진에서 아우슈비츠로 간 1550중 살아남은 112명에 그 남편이 들어있었다는 삶의 아이러니에 말문이 막혔다. 홀로코스트라는 지옥의 시대에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며 희망을 부여잡았다는 프리들이 보여준 미술이 가진 치유의 힘, 그리고 바우하우스라는 진보적 교육기관에서조차 여성을 배제했던 남성 위주 사회의 한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만드는 글이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 속에 스며든 한국 여성의 삶에의 애정, 최근 가나아트센터에서 작품을 만나본 적 있는 노은님 작가님의 작품에 스며있는 생명의 기운, 추상도 대단히 정치적일 수 있다고, 추상을 정치에서 분리한 것은 1980년대 민중미술과 단색화가 대립하며 생긴 오해라고 말하며 한국적 조형적 질서를 화폭에 풀어내는 정직성 작가님의 작품들, 버니지아 울프의 언니 버네사 벨의 노년의 자화상 속의 당당한 눈빛, 유닛 레이스터르의 당당하고 쾌활해 보이는 자화상, 아델라이드 라비유귀아르의 여성 작가들과의 연대, 아르테시미아 젠틸레스키의 자화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머리와 마음에 잘 갈무리해두어야 할 빛나는 가치들이 가득 담겨있는 책.

<여자의 미술관>과 힐마 아프 클린트라는 예술가가 겹치는데, 두 작가님들의 힐마 아프 클린트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느낄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너무 시대를 앞서가 인정받지 못하고 외롭게 세상을 떠난 힐마 아프 클린트를 향해 우호적이고 애정어린 마음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사후 20년 동안 작품들을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유언을 남긴 힐마의 선택을 한쪽은 '두고 봐라, 그때 내 그림은 분명 인정받을 것이다'라는 자기 신뢰로, 한쪽은 '소심해져'있는 상태로 읽어낸다. (어느 책이 어떻게 읽어냈는지는 비밀!) 나는 전자의 해석이 맞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소심해져 있었다면 아마도 작품을 '폐기'해달라고 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동시에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책을 연달아 읽으니, 이런 부분을 발견해낼 수 있어 더욱 즐거운 책 읽기였다.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솔직하게 쓴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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