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고 고른 말 - 카피라이터·만화가·시인 홍인혜의 언어생활
홍인혜 지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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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님의 '루나파크' 웹툰을 언제부터 알게 되었더라. 대학교 졸업반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이가 같아서 더 공감을 하며 사랑했던 웹툰이었다. 광고 회사에 다니다 퇴사를 하고 영국으로 떠났다가, 갑자기 시인으로 등단하기까지 한 작가님의 지난 십여 년을 함께 지켜보아오다 보니 괜히 막 친구 같고, (틀려) 정이 갔다. 시인이 된 루나, 홍인혜님의 에세이집이 나왔다. 시인이 된 카피라이터가 '고르고, 고른 말'에 대한 이야기라니,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창비 스위치에서 서평단 모집하는 것을 보고 냉큼 신청해 보았는데, 나의 오랜 팬심을 눈치 채주셨던 걸까, 운 좋게 서평단에 뽑혀 책을 배송받았다.

마음의 풍경을 포착한 말, 영혼의 각도를 바꾼 말, 누군가의 온기가 필요할 때 서로에게 건네는 말, 카피라이터로서 '일'하며 건져올린 말, 그리고 꽉 닫힌 세상에 똑똑, 노크하여 문을 열게 만드는 말들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나는 특히 2부의 <우리가 말을 섞을 때>의 이야기들이 좋았다. 온기가 가득 담긴 다정한 말, 사랑이 가득 담긴 다정한 말. 서로를 무너지지 않게 다독여주고, 버티게 만들어 주는 말들이 좋았다. 가장 좋았던 꼭지는 <우리는 모두 입체다>. 항상 자주,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를 함부로 단정 짓고 싶어질 때 안돼, 그러지 마! 하고 브레이크를 잡으며 머릿속에 휘몰아치던 생각들을 작가님의 정돈된 문장으로 만나니 그래, 맞아, 이거야. 하며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하지만 우리가 타인을 인식할 때는 어떤가.

나를 대할 때의 풍부한 사유와 도량은 남 앞에서 인색해진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납작하고 또 납작하다.

인간이라는 다층적인 존재는 '나'라는 필터를 거쳐 삽시간에 밋밋해진다.

표정이 어두운 친구는 그저 툭하면 우울한 애가 되고,

종종 지각하는 동료는 마냥 게으른 사람이 되고,

늘 즐거워 보이는 동창은 생각 없이 밝은 녀석으로 일축된다.

나를 설명할 때는 많은 서사를 끌고 들어와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타인은 게으르게 헤아린다. 현상만 보고 가볍게 판단하고, 손쉽게 재단한다.


말을 고른다는 것은 입장을 분명히 하고, 태도를 결정하는 일이다. 어떠한 언어로 나의 입장을 표명하고 나의 태도를 보여줄 것인지를 선택할지 정성스럽게 고르고 골라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입장을 제대로 표명하지 않은 관성적인 언어, 내 불온한 태도를 비추는 혐오적인 언어로 자신의 매일을 꾸려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러니까 좀 더 정성스럽게 말을 고르고, 골라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기회를 준 책, <고르고 고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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