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에세이&
김현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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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시인님에 이어 김현 시인님의 에세이를 읽었다. 앞서 황정은 작가님의 에세이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며 '소설가가 쓴 에세이'를 좋아한다고 말했었는데 그것은 평범한 일상에서 '반짝이는 이야기'를 건져낼 수 있는 사람의 글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시인의 에세이는 뭐랄까, '반짝이는 이야기'보다는 '단어의 날'을 발견하는 글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자주 쓰이고, 평범하게 쓰이는 단어들을 시인의 감성과 시선으로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익숙한 의미 위에 새로운 의미를 쌓아 더욱 풍성하게 느낄 수 있도록, 감각을 갈고닦아 예민하게 만들어주는 시인이 쓴 에세이의 맛을 알게 되었다.


일렁이다는 물에 떠서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거나 움직이는 것을 뜻하는 동사.

마음은 동사,라고 어느 글에 쓴 적 있고. 덧붙이자면 일렁이다는 여름 동사의 일종.

겨울 동사는 속삭이다. 봄의 동사는 어른거리다. 가을의 동사는 흘러가다.

어른거리고 일렁이고 흘러가 속삭이는 마음의 사계절.

동사를 활용해 마음의 사계절을 그려보세요. 그것이 바로 당신을 설명하는 일

p.26


나는 어떤 동사로 나의 사계절을 표현해 볼 수 있을까?를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었던 문장이다. 동사로 계절을 떠올리는 것이 생각보다 참 어려웠다. 비록 그럴싸한 동사의 사계절을 그려내진 못했지만 잠시라도 우리말 단어들을 이것저것 떠올리며 계절과 어울리는 동사를 찾아보려고 애썼던 그 시간이 참 즐거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얼마나 건성으로 단어들을 대했는지도 새삼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란 결국 나를 세우는 마음이며 그 마음만이

어쩌면, 하고 한 사람의 삶을 대신하여 살 수 있는 용기와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모든 사랑은 자기에서 출발해 타인의 경유하고 마침내 우리에게 도착한다는 것을 깨치는 연쇄작용이었다.

P127


이 책에선 이렇게 시인다운 이야기들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생활인으로서의 김현, 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자꾸만 특정 동네의 아파트 시세를 알아보는 이야기가 요즘 나와 너무 똑같아서 한참 웃다가, 사회가 정해놓은 길 밖에 서 있기 때문에 사회가 내어준 기회에 손조차 뻗어볼 수 없는 현실의 불합리함을 문득, 깨닫고 화가 나기도 했다. (물론 나는 작가님의 사정과는 사뭇 다른 '비혼 가구'로서의 입장이지만) 생활 동반자 법과 차별 금지법의 필요를 다시 한번 절감하게 하는 너무 현실의 싸한 쇠의 맛이 느껴졌더랬다. 그러면서도 차별과 혐오에 결코 지지 않겠다는, 지지 않기 위해 끝내 다정해지겠다는 마음이 나에게 와닿았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란 삶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환상을 버리는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죽음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모든 죽음에 애도를 표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다는 이유로 죽음을 소란스럽게 앓고자 하는 이를 더는 가까이 두고 싶지 않다.

살아 있다는 이유로 고요히 소멸해가는 이와 이제 더욱 가까이 지낸다.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잘 이르고 싶다는 이들의 침묵에 더 마음이 쓰인다.

그런 이유로 나는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두고 수의 대신 입고 싶은 옷을 골라 놓거나

장례식장에서 계속해서 틀어놓고 싶은 음악을 미리 귀띔해 주는 사람을 벗으로 두고 있다.

바로 나 자신이다.

P.142


현실이라는 바닥에 두 발을 착, 붙인 글이라서 좋았던 김현 작가님의 에세이에서 특히 자주 눈에 들어온 단어는 '죽음'이었다. 올해 4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생전 처음으로 '죽음'이 현실로 느껴졌었다. 십 년 전 친한 친구가 떠났을 때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떠났을 때도, 장례의 '주체'가 아니었다 보니 느낄 수 없었던 감정들이 할머니의 장례식 때, 아버지가 안 계셔서 손주인 오빠와 내가 장례의 주체가 되어보니, 갑작스레 몰려왔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습관처럼 '내 꿈은 단명'이라고 외치던 것을 멈추었다. 죽음을 가볍게 여기던 태도를 고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난 단어의 무게를 가벼이 느껴온 것만큼 삶의 무게 또한 가벼이 여겨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인생이라는 일 인분의 그릇을 내 힘으로 채워 왔는가,라는 물음 앞에 자꾸만 작아지는 요즘. 죽음에 잘 이르기 위해 그릇 안에 무엇을 채워나갈지를 잘 생각해 보아 할 때다. 삶의 무게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때다.


다정하기 싫지만 다정한 시인, 김현 작가님의 문장에서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잘 이르고 싶다'라는 이들의 '침묵'을 배웠다. '타인의 얼굴에서 시간을, 시간에 힘입어온 기쁨과 슬픔을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것(p.149)'이 어른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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