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라는 바닥에 두 발을 착, 붙인 글이라서 좋았던 김현 작가님의 에세이에서 특히 자주 눈에 들어온 단어는 '죽음'이었다. 올해 4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생전 처음으로 '죽음'이 현실로 느껴졌었다. 십 년 전 친한 친구가 떠났을 때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떠났을 때도, 장례의 '주체'가 아니었다 보니 느낄 수 없었던 감정들이 할머니의 장례식 때, 아버지가 안 계셔서 손주인 오빠와 내가 장례의 주체가 되어보니, 갑작스레 몰려왔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습관처럼 '내 꿈은 단명'이라고 외치던 것을 멈추었다. 죽음을 가볍게 여기던 태도를 고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난 단어의 무게를 가벼이 느껴온 것만큼 삶의 무게 또한 가벼이 여겨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 인생이라는 일 인분의 그릇을 내 힘으로 채워 왔는가,라는 물음 앞에 자꾸만 작아지는 요즘. 죽음에 잘 이르기 위해 그릇 안에 무엇을 채워나갈지를 잘 생각해 보아 할 때다. 삶의 무게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때다.
다정하기 싫지만 다정한 시인, 김현 작가님의 문장에서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잘 이르고 싶다'라는 이들의 '침묵'을 배웠다. '타인의 얼굴에서 시간을, 시간에 힘입어온 기쁨과 슬픔을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것(p.149)'이 어른이라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