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문화지도
다이앤 애커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나보다 나중에 책을 읽을 독자들을 위해 몇 마디 하자면, 이 책은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는 뇌과학 책과 거리가 멀다. 저자 다이앤 애커먼은 과학자가 아니라 시인이자 에세이스트다. 당연히 이 책에서 그녀가 관심을 갖는 것은 뇌에 관한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인식, 감정, 기억, 자아 같은 마음의 작용들이다. 그래서 책의 성격은 굳이 규정하자면 인문학적 사유를 바탕에 깔고 있는 에세이에 가깝다. 또 하나, 목차를 보고 수많은 예술가, 사상가들의 에피소드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리라 기대한다면 그 또한 실망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 데이비드 린치, 살바도르 달리, 안톤 브루크너 등은 그저 지나가는 수많은 이름들 중 하나일 뿐이다.

책에는 과학적 지식보다 인용구들이 많고, 인용구보다 저자 개인의 관찰과 사적 감상이 많다. 일관된 주제 하에 체계적으로 집필되었다기보다는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서술되어 있다. 이런 글쓰기가 마음을 다루기에 효과적인 방식일까? 확실히 대표작인 그녀의 <감각의 박물학>은 이런 독특한 문체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완벽하게 어울렸지만, <뇌의 문화지도>는 종종 지나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자신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자의식 과잉을 보이는 대목이 많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보다 뇌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많지만, 그녀만큼 마음에 관한 효과적인 구절들을 적소에 인용할 줄 아는 사람은, 그리고 그녀만큼 시적이고 투명하게 언어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른바 권태라는 것은 일종의 정신적 생략법이다. 권태는 깨어 있되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상태다."(p.87) "활성화된 뉴런들은 서로의 유대를 강화하며, 뇌 속에서 작은 파벌 또는 사교클럽을 만든다."(p.153) "어떤 의미에서 예술가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자기도 모르게 뇌를 연구하는 신경학자들이다."(p.267) "뇌는 쉽게 지루해하며, 혼자 놀기 선수다. 세상을 흐릿하게 만들면 뇌는 자기만의 마음의 극장을 만들어낸다."(p.306) 책에는 이런 아름다운 문구들로 넘친다. 이런 감수성을 사랑한다면 <뇌의 문화지도>가 마음에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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