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 할림 1
김재기 지음 / 이론과실천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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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외관상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닮았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수수께끼 같은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줄거리에, 철학적 종교적 역사적 지식들을 망라한 지적 소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지향하는 지점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알라 할림>은 지식의 불확실성, 진리의 상대성, 인간 인식의 한계를 말해주는 소설이다. 제목을 다시 한번 보라. 알라 할림, 신만이 아신다!

소설의 주인공인 22살의 무슬림 청년 알리는 우연한 계기로 의문의 살인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일에 연루된다. 자체 조사와 여러 주위 인물들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의 조각들을 맞춰가는데, 정보가 쌓여갈수록 해결책은 요원해지고 계속해서 다른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알리는 고민을 한다. 누군가 거짓 증언을 한 것이거나 내가 수집한 정보가 거짓이거나 아니면 조사의 방향 자체가 잘못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알리조차 실은 자신의 이해 관계 때문에 사실을 숨기고 거짓 증언을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한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 실상을 바로 보는 데 얼마나 걸림돌이 되었던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소설의 진면목은 사건 해결이 아니라 그 해결을 둘러싸고 인물들간에 벌어지는 설전에 있다. 교조적 믿음에 빠진 신부에서 회의적인 철학 교수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믿음과 종교,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지적으로 충돌하는 면면들이 이 소설의 본령인 것이다. 그렇기에 소설은 결국 범인이 누군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 것은 물론 상황 자체도 미궁에 빠진 채로 끝난다.

살인과 추리는 우리 삶에서 가장 논리적인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지식의 불완전함을 논하기 위해 살인 사건을 소재로 삼은 것은 참으로 현명한 전략이다.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절대적인 지식과 믿음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연 얼마나 확실한 것인가. 그런 점에서 추리소설의 탐정들은 신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놓이는 이들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충돌에, 유대교와 이슬람교 내부의 순니파, 시아파의 갈등까지 혼재된 15세기 말 스페인 남부 지방을 배경으로 삼아 상이한 믿음과 세계관의 충돌을 설득력 있게 펼쳐 보이고 있다. 아마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다름을 포용하는 관용과 이해, 공존의 지혜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편 이 소설은 알리라는 청년이 지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부가적으로, 철학적 사고 훈련을 위한 교본으로도 손색이 없다.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는 표현은 이런 책을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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