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정보SW실습시간에 스캔할만한 A4크기의 지도를 가져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래서 집에 있는 지도책을 찾다가, 무라카미 교수님의 사모님이 보내주신 지도책을 펼치게 되었다. 게비선, 키스기선과 산코선. 추코쿠 산지를 가로지르는 로컬 열차노선.


일본유학시절, 나는 기차여행을 큰 즐거움으로 삼고 있었다. 여행과 열차 관련 잡지를 매달2종류씩 사들였고, 철마다 포켓판 JR시각표를 샀다. JR패스와 청춘18티켓. 큐슈와 서일본을 여기저기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특히나 무더웠던 그 여름, 히로시마역에서 로컬선으로 갈아타는 역까지 어떻게 갔던가. 도시 근교선의 혼잡함을 약간 기억. 그리고 도중에 자리잡아 앉아서 졸며 갔기 때문에 필름 끊김. 드디어 도착한 한적한 산속에 위치한 역사. 여름이라 그랬지, 날씨 나쁜 겨울이라면 딱 귀신 얘기하기 좋은 서늘하고 외딴 대합실. 원맨차량. 교과서에서만 배운 스위치백. 약수터. 아버지와 여행중인 남자아이. 배낭을 맨 서양인 커플. 비행기 화물택이 달린 여행가방을 든 샐러리맨 풍 남자. 도중에 오래 정차한 역에서 역 주변을 산보하다 산 명물만주. 그리고 드디어 종점인 신지호수에 도착! 거기서 상잉본선으로 갈아타고 마츠에로 이동.


타마즈쿠리 온천가에는 갈 수 없었지만, 마츠에에서 신지호수 근처의 온천탕이 딸린 비지니스 호텔에 방을 잡았다. 여자 손님은 얼마 없어서 여탕은 거의 독차지하고 쓸 수 있었다.

아침에 신지호수에 나갔다가 조깅하는 아저씨와 대화.


체크 아웃하고, 마츠에성에 가봤다. 일본 성 안에 들어가 본 것은 그게 처음. 이렇게 좁고 가파른 계단이 있는 곳에서 잘도 그 무거운 갑옷을 입고 무기 들고 뛰어다니며 싸웠다니, 옛날 사람들은 정말 몸집이 작았나보다.


마츠에 시내 관광. 무사가 살던 집을 보존한 민속촌 같은 거리, 자그마하지만 여우 조각이 인상적이던 신사 등등. 여행의 계기가 되기도 했던 이즈모 신화에 관한 작은 책자 구입.


이치하타 전철. 센과 치히로에 나온 건물과 같은 낡은 이즈모다이샤 역사. 녹차 오레 분말. 인상적인 이즈모 다이샤 건물. 바다가 가까운 듯 했지만, 시간 관계상 가지 못하고 삼색소바를 점심으로 사먹음.


시간 절약을 위해 잠시 특급열차를 탐. 상잉선의 특급열차는 상요선의 특급열차와는 너무나 달랐다. 어릴 적 보성에 갈 때 타고갔던 것과 비슷한 낡은 열차. 상잉지방이 상요지방보다 개발이 덜 된 지방이긴 하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바닷가와 어촌의 풍경이 상요지방의 그것과 매우 달랐다.


그리고 다시 로컬선으로. 고우강에서 카약을 타는 사람들. 인상적인 다리들. 어둠이 깔린 미요시 역에서 다시 히로시마로 가는 기차를 갈아탐. 그때의 묘한 느낌, 잊을 수 없다. 쓸쓸함, 그리움, 아쉬움, 집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


나중에 [여행과 철도]잡지에서 나와 비슷한 여행코스를 다룬 여행기가 나왔다. 여행시기가 비슷했었고, 기자가 묘사한 열차내 풍경 등이, 그  기자가 나와 같은 열차를 탄게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산단쿄까지 가는 카베선이 이용자 감소로 인해 폐선되었다는 소식을 몇년전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째서 카베선만 타보지 않았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대구공항에서 나가사키까지 2박3일이 싸게 나와있다. 여기서 인천공항을 가는 시간이나 대구공항을 가는 시간이나 별 차이 없을 것이다. 나가사키에 가서 시모하라반도라도 돌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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