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아직 20세기후반. 삼일절 연휴라고 해도 서울은 추웠다. 그러나 홍콩은 아열대에 위치해 있지 않은가. 옷을 어떻게 입을 지가 고민거리였다. 한편 여행 떠나기 바로 전날까지 야근을 했고, 비행기는 또 아침 일찍 출발편이라 짐을 어떻게 챙기고 갔는지. 캐세이 패시픽의 에어텔 상품(Supercity)으로 갔었는데, 갈 때의 비행은 거의 기억이 안난다. 너무 아침 일찍 나서서 정신없기도 했고. 도중에 타이페이를 경유했는데, 타이페이 장개석 공항의 보안이나 설비가 옛 김포공항을 연상케 했다.
홍콩의 쳅랍콕 신공항은 으리으리했다. 그런데 입국수속을 거치고 나와보니, 나와있을 줄 알았던 Supercity패키지 담당 가이드가 없어서 좀 헤매다 공항 안내센터에 물어봐서 어찌어찌 호텔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공항의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홍콩이 의외로 영어가 안통한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호텔명을 외치니, 한 아저씨가 또 다른 아저씨에게 뭐라고 하고, 그러자 그 아저씨는 꼬리표에다 한자로 호텔명을 적어서 달아주는 게 아닌가. 외래어를 중국어로 표기하는 건, 보고나면 아하~하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어떻게해서 그렇게 표기하게 되는지 참으로 오묘하다. 그런데 호텔 프런트 직원의 영어는 또 왜이리 빠르담. 거의 감으로 알아듣고 대응했다.
우리는 침사추이의 윈저호텔에 묵었는데, 침사추이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도로(뭐라 하더라)에서 가까운 작은 호텔. 미라마 타워를 끼고 돌면 금방이었다. 호텔은 낡았고, 창문 밖의 빽빽히 들어선 낡은 건물에 질겁했지만, 2박3일 머무르기엔 충분했다. 침사추이는 거의 걸어서 돌아다녔으니까, 위치가 좋았다.
홍콩 관광의 압권은 [100만불짜리 야경]이었다! 우리는 이틀밤 내내 야경을 보러 나갔는데,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SF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안개까지 껴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이것만으로도 홍콩에 온 보람 있다.
그리고 영화 '중경삼림'에 나왔던 세계최장 에스칼레이터도 타보고(올라갈 수록 고급 주택가가 나타난다), 빅토리아 피크도 가보고(트램이 재미있었다), 새로 지은 국제전시회장이랑, 타임즈 스퀘어까지 전차 타고 가보고(전차가 무지 좁고 어두컴컴), 주말이라 거리를 매운 필리핀 출신 가정부들도 잔뜩 보고, 침사추이로 돌아올 때는 배를 탔다.
홍콩관광은 쇼핑과 음식이라더니, 맞는 말이다. 패키지에 식사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점심, 저녁은 식당에서 사먹었다. 첫날 저녁때 호텔 근처 예쁜 레스토라에 가서 包子라는 단어가 들어간 걸 시켰더니, 샌드위치가 나와서 낭패. 그후로는,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에서 먹기도 하고, 빅토리아 피크에 있는 마르쉐에서 먹기도, 아침식사는 편의점과 제과점에서 전날 저녁에 사둔 걸 호텔방에서 먹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병에 든 비타초코우유가 지금도 그립다. 딤섬(얌차)은 관광가이드에 실린 식당에 가서 아침과 점심 사이에 싸게 하는 시간에 가서 먹었다. 아줌마들이 딤섬이 든 바구니가 가득 실린 카트를 밀고 다니면, 식탁에 앉은 손님들이 원하는 걸 달라고 한다. 그러면 아줌마들은 식탁별로 있는 주문표에 품목별로 주문도장을 찍고 딤섬을 준다. 맛있었는데, 생각만큼 많이 먹을 수 없었다. 아깝다.
그리고 쇼핑! 아네스 베같은 건 아무리 홍콩이라고 해도 비싸서 그림에 떡. 그렇지만, Watson같은 화장품 할인점이나 중저가 Local Brand인 Bossini랑 Lady Giordano는 무척 맘에 들었다. 거기서 무지 싸게 구입한 반팔 T셔츠와 면바지, 양모 카디건은 지금도 애용하는 아이템.
2박3일간 무지무지 걸어다녔다. 그때만 해도 젊었다. 지금도 그렇게 걸어다닐 수 있을까? 자신없다.
귀국할 때, 캐세이 패시픽의 한국인 승무원들이 매우 친절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맛있는 기내식(비행시간을 즐기기에 딱 알맞다. 그런 의미에서도 좀더 동남아에 가봐야 하는데...)과 여유있는 좌석, 비행기창 바로 건너편으로 보이던 별도. 별을 올려다보지 않고 그냥 옆눈길로 바라본 것은 그 때가 처음.
한자 간판이 가득한 거리에 서보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일어난다. 타이페이에 가고 싶다. 남들이 '벌레 많데''비만 온데'하고 말리던, 가야겠다. 타이페이에 사는 대학원 동기, 선배들에게 연락을 취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