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한국인 대개가 알다시피, 전쟁이 발발한 시기다. 내 할아버지는 산채로 묻혔고, 아버지가 그걸 목격했다. 이런 정도의 가족사는 물론 흐르고 넘친다. 난 그저 들었을 뿐이다.

사람의 인생이란, 그 구체적인 삶의 맥락과 진의란 글나부랭이 따위론 표현되지 않는 법이다. 내가 오직 알고 싶은건, 울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끝까지 싸우려 들었을까 하는 것 정도. 그해 여름이라면 다들 도망가기 바쁜 시기였는데.. 있다 하는 집안의 아들들은 후방으로 빼돌려 지거나, 있다 하는 집안들에선 부산 앞 바다에 도망갈 배 띄워 놓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뭐하러 그렇게 충성을 하셨을까. 아버지는 얼마전 당뇨 검사 받으러 보훈 병원에 가셨는데, 야 유공자 자녀 덕 보는 날이  다 있구나 라고 하셨다. 난 그 말을 들으면서도 할아버지의 애국심이란 것의 정체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불과 수십년 전인데.. 해방 정국과 고대사가 나에겐 그리 다르지 않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해석은 이미 충분하다. 알고 싶으나 들을 수 없는 것은, 그 당대를 살아간 이들의 목소리 뿐. 또한 나의 심증은 그저 나의 심증일 뿐.

하긴 중국 애들이 신의주 특구를 조져 놓은 것에 대해 상당히 마뜩치 않은 나의 감정이란 것도, 대한민국이란 체제와 정체성에 대한 동질성만은 딱히 아닌 것이.. 피압박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본질적으로 다른 대안이란 결국 헛된 꿈아 아닐까 싶다. 그럼 내 조손뻘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한반도의 그때 그때 정세에 따라서, 친중이냐 친미에 따라 영향을 받을까. 내가 내 할아버지 뻘들의 (동족 간의 전쟁마저 불사하는) 애국심의 근원이 그다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처럼, 나의 지금 생각들도 아마 수십년 뒤엔 이해 받지 못 하거나, 오해만을 낳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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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2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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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수는 학부 레벨에서 거시나 국제경제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리써치보단 티칭에 주력하는 스타일로 사료된다, 하긴 연세가 이미 회갑을 넘었다. 좌파 성향이거나 정치경제학 전공자가 아닌 것은 확실하고, 케인지언과 네오 리버럴의 모습이 혼재되어 있다. 하긴 강의 내용이나 유교수의 학문적 입장이 만화에 등장하는 것은 많지 않은 분량이라, 추측에 애로가 있다. 대미 무역에 관해선 역시나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일본적 특수성을 옹호하는 경향을 띈다. 기타 문제에 관해선 대체로 원론적인 시장-경제를 지지한다. 

논문 심사에 상당히 까다로운 유교수의 일면은, 일본에서 석사 논문 쓰고 머리가 다 빠진 모 선배를 생각나게 한다 (한국의 인문사회 계열 대학원은 그렇게 몰인정하진 않다 ). 그러나 일본 학생들 역시 취업에 불안해 하고, 어렵고 딱딱한 수업은 가급적 제끼려 하는 모습에서 한일 양국 간의 유대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수십권에 걸쳐 '사람에 관한 학문' 이라는 표현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 것이 흥미롭다. 실제로 귀납적인 관찰과 연구 끝에 자신의 세계관을 수정할 수 있는 경제학자란 현실 세계에선 그다지 흔한 존재가 아니다. 당대 세계에 관한 이해의 틀을 제공하는 것이 소명인 학자에게 바라는 덕목이 유교수의 입을 통하여 표현되는 듯. 청강생을 마다하지 않는 중소기업 사장을 그린 꼭지에서 특히 강력한 주문이 느껴진다. 대중에게 도그마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할 것. 하긴 만화니까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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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 브레히트 선집 1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음, 김광규 옮김 / 한마당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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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방법 (1953)

6월17일 인민봉기가 일어난 뒤

작가 연명 서기장은 스탈린 가에서

전단을 나누어 주도록 했다.

그 전단에는, 인민들이 어리석게도

정부의 신뢰를 잃어 버렸으니

이것은 오직 2배의 노동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다고 씌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정부가 인민을 해산하여 버리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는 것이

더욱 간단하지 않을까?

 

그나마 나은 사회주의였다는, 겨우 1953년에, 천하의 브레히트가, 저런 풍자시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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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산에 가지 않았다 1 - 한 심리학자의 개구리소년 추적기
김가원 지음 / 디오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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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체 유기 장소의 제보자와 살해범은 동일인물이거나, 최소한 깊은 관계가 있는 인물이다. 관련 인물의 자발적인 등장만으로도 큰 단서가 되는 현대 범죄수사의 수준으로 볼 때, 경찰의 수사가 거의 진척이 없었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힘들다. 저자의 주장대로 애초에 접근 자체를 잘못한 탓일까.

사체 발견 장소는 사건 발생 장소와 일치하지 않는다. 옮겨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살해 장소가 거기였다면, 그정도 규모의 야산에서 대규모 인원이 동원된 수많은 수색에도 불구하고 한구도 아닌 여럿의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을리 없다.   

5구의 시신을 민가에서 멀지도 않은 곳으로 뒤늦게 옮겼다면, 일인의 힘만으론 감당키 어려웠을 것이다. 준성인에 가까운 남자 소년 5명의 살해, 은폐, 사체 이동 등을 개인 혼자서 수행하진 못 했을 것.

저자의 추측대로 살해범이 면식범이었고 1인 이상의 조력자가 있었다면 정황적으론 설명이 될 듯 하다. 그러나 정서적으론 용납키 어려운 가설인바, 저자가 치른 댓가가 상당히 컸던 듯.;;

'흥미롭게 읽었다는 사실' 에 좀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데, 죽음의 전모에 대한 진실의 일부라도 밝혀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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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 귀여니 시집
귀여니 지음 / 반디출판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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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봤다. 내 취향은 아니다. 하긴 대부분의 문학이 내 취향이 아니다 (한때 문청이었던 내가 어쩌다). 그러나 활자를 접하는데서 오는 시각적 즐거움만큼은 여전하다 (그나마 다행). 단지 그것이 시나 소설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이 아닐 뿐 (픽션이라면 확실히 만화를 많이 읽는다).

귀여니의 어리고 젊은 독자들도 영원히 귀여니만을 읽진 않을 것이다 (비슷한 가능성이 귀여니 본인에게도 있을 것). 표현이 조금 닭살스럽더라도 그 감수성까지 조잡하다고 하긴 어렵다 (우리도 언젠가는 모두 조잡스러웠다). 조잡한 것이라기보단, 표현 방식이 좀 다른 감수성일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발전해나갈). 나는 남진과 조용필과 HOT 모두가 자신의 당대와 나름의 방식으로 소통했다고 생각한다 (동방신기가 그들의 어떤 당대인들에게 절실하게 어필하고 있는 것처럼). 싫으면 싫은대로 싫어할 자유가 있지만, 존재 자체를 부정할 권리는 아마 누구에게도 없을 것이다. 귀여니의 글은 정통 문학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많지 않겠지만 (그러나 인간은 알 수 없다), 그 존재 그대로 그냥 기능하면 될 일이다. 성장과 발육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군것질도 부러 하는 시기가 있는 것처럼. 문학으로서의 사명과 정통과 수준은 지켜야 할 분들이 열심히 지키면 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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