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도서관 기행 - 오래된 서가에 기대 앉아 시대의 지성과 호흡하다
유종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도서관에 가면 책을 읽지 않아도 나를 충실히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충만해지는 느낌이랄까. 어느 분들을 교회에가면 신과 하나가 되는 충만함을 느낄테고, 또 어떤 분들은 절에 가면 그런 느낌을 가질 테지만, 나는 책 많고 고요한 도서관에 가면 괜히 그런 느낌이 드는 게다.

  많은 책들의 속삭임과, 책 읽는 사람들의 아우라가 나도 책 속의 한 책인 듯, 책 속에서 나를 만난다.

 

  내가 가 본 도서관이라곤 서울에 있는 몇 군데 도서관이 전부인데, 이 책은 제목도 거창하게 "세계 도서관 기행"이다. '세계의 도서관은 어떤 모습일까? 그곳에 있는 많은 책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하는 질문들 중에 물론 이 책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대답을 많이 한다. 도서관에 얽힌 이야기들과 건물, 외관 등은 자세히 설명하나 그 안을 채운 책들에게 대한 이야기는 그다지 많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하기야 각각의 도서관들과 그 안의 책들까지 이야기했다면 아마 책이 한 권으로 끝나진 않았으리라. 

 

  불타버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다시 알렉산드리아에 다시 지어진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고, 러시아의 도서관들을 보는 것도 좋았다. 책에 소개된 도서관들의 건물 내외관이 어찌나 화려찬란, 웅장한지 국립중앙도서관을 떠올리고는 조금 의기소침.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도서관 구경을 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보면서 언젠간 가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특히 책의 마지막 장에 소개된 국내의 작은 도서관들은 휘황찬란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고 우리 동네에 있을 것 같은 친근한 맛이 있다.

 

  이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몇 구절을 찾아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의 높은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이다. 그 분들이 그토록 추앙해 마지 않는 '미국'의 의회 앞 '뉴지엄(Newseum, 언론박물관)' 내부 벽면에 새겨진 링컨의 말이다.

의회 앞 뉴지엄 내부 벽면에 크게 붙여 놓은 그의 말은 도서관과 언론의 핵심적 사명을 짚은 것이다. "국민에게 사실을 알려주어라. 그러면 나라가 안전할 것이다. Let the people know the facts, and the country will be safe."  -224쪽

 

  보면서 불편했던 부분도 있었는데 『Story in Library : 이야기가 있는 도서관』 이야기들 중 "과거와 싸우지 않는 권력"이라는 부분이다. 이 꼭지에서 저자는 "미래를 도모하려면 과거를 접을 줄 알아야 한는 법"이라고 하고 있다. 예로 든 인물들은 정조와 소진과 만델라, 덩샤오핑을 들고 있다.

중국 전국시대 합종책으로 유명한 소진이 조나라 군주 숙후를 유세차 방문했을 때 마침 숙후는 과거 청산에 골몰하고 있었다. 대개의 경우 과거 청산은 단죄와 보복이 수반된다. 소진은 이를 걱정한 나머지 다음과 같은 말로 군주를 설득했다. "과거 청산은 중요한 일이지만 너무 과거에 집착하면 나라의 미래에 해를 끼친다. 과거 청산을 하되 과거와 싸우는 방식으로 하지 말고 미래의 청사진으로 과거 청산을 하라. 미래의 밝은 빛으로 과거의 어둠을 몰아내야 나라의 장래가 밝아진다" -318, 319쪽

 

영국의 처칠은 "과거와 싸우면 미래가 죽는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 319쪽

 

  과거 청산이 너무도 안 되어서 미래의 청사진마저 흐릿한 요즘, 과거와의 화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저자가 『분서의 비극이 새겨진 자리 베벨 광장』 꼭지에서 나치에 의해 '분서 축제'가 벌어졌던 그 자리에 설치된 조형물을 보여주고, "현재 독일의 훌륭한 점은 나치의 죄악에 대해 사과와 반성을 충분하게 한다는 점이다"(70쪽)라고 쓰고 있다. 두 꼭지가 서로 바뀌어 실렸더라면 조금은 덜 불편했을 텐데, 안타깝다.

 

  이러저러한 불만에도 불구하고(세상에 어느 책에 안타까움이 없을 수가 있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세계의 도서관을 구경할 수 있었다. 세계 어디서나, 책 욕심은 우위를 가릴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래도 훔쳐간 우리 책들은 돌려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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