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듀어런스 -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 보급판
캐롤라인 알렉산더 지음, 김세중 옮김 / 뜨인돌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의 부제는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다. 실패했고, 모든 대원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기에 위대했던 실패다. 위기의 순간에도 모든 대원이 “파리대왕”에서처럼 극심한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협동하며 단결한 점은 감동적인 일이다. 특히 그런 상황을 이끌어내었던 섀클턴의 리더쉽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딴지를 걸고 싶다. 애초에, 남극 횡단 계획을 수립했을 때 섀클턴의 가장 큰 두려움은 부빙에 끼어 해류를 따라 흘러 다니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다. 남극에 상륙해보지도 못한 채 말이다. 그곳의 해류를 익히 알고 있었다면 그에 대해 대비해야 하지 않았을까? 상륙지를 변경한다던가 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물론 나는 남극에 대해서 문외한이고 그런 극지를 탐험하는 모험은 책으로 충분한 위인인지라 확실한 대안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섀클턴이 어떤 준비를 했는지 남극의 상황이 어떠한지 대한 친절한 설명은 전혀 없다. 그저 죽을 위험에 처했고 엄청난 노력 끝에 모두 살아났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다. 정말 섀클턴이 그런 상황을 예견했으나 준비하지 않았다면 그는 엄청난 낙관주의자이거나 무책임한 사람일 터이다. 아니면 극지 탐험이라는 것이 모두 이런 식었다면 그것은 인간의 도전정신과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 아닌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무모함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일 게다.

  그렇다고 내가 생존을 위한 그들의 투쟁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또 위기가 닥쳤을 때 ―그에 대한 준비가 되었건 안 되었건 간에― 이겨내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 섀클턴을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영하 30도 이하의 추위를 견디며 씻지도 못하고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면서, 먹을 것은 물론 거의 없는 상태로 얼음 속에서 500여일을 견딘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기에 준비를 조금 더 철저히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대륙횡단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고생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책은 상황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심지어 연도와 날짜 계산이 틀려서 언제가 언제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이들의 모험 일지를 재구성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이 책은 생생하고 아름다운 현장사진집이다. 특히 어둠 속의 인듀어런스 호(66, 67쪽)는 검은 밤하늘과 얼음 사이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처럼 신비하다. 배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습도 생생하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활기 있는 모습부터 “가장 지저분한 모습을 찍은 사진”(151쪽)까지 바로 현장에 있는 것 같다. 정확한 데이터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저 그들의 고생에 감동하고 감탄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사진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만하다. 그래도 사진에 걸맞은 정확한 연표와 지도가 있었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접을 수 없다. -1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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