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에서 일어난 시체. 좀비 또는 흡혈귀 같은 존재.
감정과 이성이 있으니 좀비는 아니고, 피를 빨아먹지 않으니 흡혈귀는 아니지만
호흡하지 못하고, 맛도 냄새도 느끼지 못하는, 살아 있는 시체.
자신은 걸어다녀선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죽음 이후 모두가 불태워지는 시대에 다시 일어난,
마지막으로 남은 죽은 사람, 외로운 윌리엄 랜트리.
그는 외롭기 싫어 친구를 만들기 시작한다.
무려 416년 만에 무덤에서 나온 그가 맞이한 시대는 과거에 살던 시대와 참 다르다.
사람들은 거짓을 말하지 않고 불면도 없으며
상상하지 않고 살인도 하지 않고, 시체는 누구도 매장하지 않고 불태운다.
2265년, 대소각기에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불태워진 후
2349년, 랜트리가 깨어난 이후에도 과거의 작가들은 여전히 조롱 받는다.
책을 불태우고, 공포도 상상도 사라진 세계,
"미래 사람들처럼 논리적으로 말하고 추론했더니 생명력이 사라"진 랜트리.
그의_존재에 대한 불신은 그를 무력하게 만들고 마는데.
과거의 잔재, 미래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주인공,
어쨌거나 미래에 홀로 선언한 그의 전쟁은 패배로 끝난다.
그리고 그를 마지막으로 상상의 잔재들은 모두 소각되고.
과거의 우리들에겐 아포칼립스인 이 책은,
모든 책을 불태운 후 남아있는 책들을 찾아 불태우는 직업, 파이어파이터와
미래사회를 그리는 <화씨 451>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화씨 451>의 책 한 권 읽고 고뇌하는 주인공보다는
이 책의 살았지만 죽어있는 주인공이 훨씬 공감간다.
아무래도 내가 읽고 있으며 상상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한때는 살아있었던,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 있는,
그의 죽어감을 애도하면서.
TMI :
1948년 단독 출판되었지만 1959년 <멜랑콜리 묘약>에 함께 수록되었다.
그리고 소설모음집은 <멜랑콜리 묘약>과 <온 여름을 이 하루에>로 번역되었다.
같은 출판사, 같은 번역가, 더 많은 수록작.
이 책으로 살걸……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