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8
이디스 워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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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훈

1916년, 이 소설이 출판된 해 미국에서, 미혼 여성의 연애는 대단히 위험했다.

(물론 그 시절 다른_곳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연애보다 자기 계발!


2. 한 줄 평

결과론적으로 보면 웹소설 식으로 키잡물. (키워서 잡아먹는 결혼하는 장르.)


3. 클리셰

아름다움 문장과 상황에 적절한 묘사로 쉽게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불편했는데 이유는 클리셰가 너무 뻔해서.

채리티의 삶이 결코 빛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미천한 신분, 세상에서 동떨어져 변화없는 시골마을,

교육도, 직업도, 독립에 대한 희망도 별로 없는_십 대 후반의 여자.

도시에서 온 세련되고 아름다운 청년.

불나방처럼 젊고 빛나는 열정으로 뛰어들었지만

당연한 결과로 떠나는 남자, 버림받는 여자.


춘향이나 카츄사나(톨스토이, <부활>), 판틴(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이나

또 다른_'미워도 다시 한번'류 신파의 주요 소재.

너무도 많이 나오는 이야기.


차라리 남자의 이빨을 모으고 상투를 깎아 수집하는 쪽이(feat. 이춘풍전이랑 배비장전)

훨씬 속 시원하다.


4. 차이점

다만 이 책이 위에 언급한 소설들과 좀 다른 점은

일방적 피해자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한 번쯤은 짧은 삶'을 살아보고 싶었던 '현실을 아는 여자'의 시선을 따라가기 때문인데

열여덟 살짜리가 현실을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나.

그러니 해처드 부인이 자신에게 준 교육과 떠남의 기회를

로열씨의 방해와 자신의 결정으로 차버리고는 그저 눌러 앉아 지리멸렬해하지.


때마침 나타난 루시어스 하니.

그를 사랑하게 된 것도, 만난 것도, 헤어진 것도 모두 한 여름의 일탈이다.

채리티가 마을을 떠나 법과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산'으로 떠났거나

도시로 가서 판틴처럼 불행했을지라도 자신의 삶을 살았다면

덜 찝찝했을 것을,

돌아간 곳은 다섯 살 때부터 키워준 로열 씨의 옆자리다.

아내가 죽자 열일곱 살짜리한테 결혼하자고 한 그 남자.


5. 작품해설에 대한 비동의

책의 마지막 '작품해설'에서는 이 소설을 여성 성장 소설이라고 규명하며

"'영혼의 개안'을 다룬 최초의 성장소설"이라고 정의했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여성의 성적 열정을 다뤘다는 점은 인정하나

영혼의 개안을 다뤘다고 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만한 정신적 성장을 이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인데

채리티는_시작부터 끝까지 현실의 가장 편안한 선택과 욕망에 타협했을 따름으로

한 여름의 열정을 좇는 어리석음, 시든 나뭇잎처럼 자신도 시들어버린 채로

"불가항력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을 겪은 사람이었지만

거기에 이르는 걸음은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로 남아

원래 그랬던 대로 가장 안전하고 현실적인 선택을 했으니까.

젊은 여자 하나가 노스도머의 거리 한 끄트머리에 있는 로열 변호사의 집에서 나와 문가에 섰다.
6월의 오후가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 P7

그날 저녁 늦게 차가운 가을 달빛을 받으며 두 사람은 붉은 집 문 앞에 마차를 세웠다. - P264

그 젊은이가 해처드 부인네 문으로 들어서는 것을 보자 네틀턴에서 보았던 눈부시게 화려한 거리가 되살아났다. 채리티는_갑자기 자신의 낡은 햇빛 차단용 모자가 부끄러워졌고, 노스모어가 싫어졌고, 그 푸른 눈이 저 멀리 어딘가 네틀턴보다 더 아름다우 곳을 향해 열려 있는 스프링필드의 에너벨 볼치에게 질투가 났다.
"모든 게 지긋지긋해!" 채리티는_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 P12

그는 무척이나 ‘외로운 사람이었다.‘ 채리티 자신이 너무나 ‘외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로열 씨와 채리티는 그 쓸쓸한 집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고독의 깊이를 헤아리곤 했다. 채리티는_그에게 특별한 애정이 없었고, 눈곱만치도 고마움을 느끼지 않았다. - P25

"이 마을에서는 무엇이 되려고 애써봐야 모두_헛수고란 말이야." 채리티는_베개에 대고 혼자 중얼거렸다. - P38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까맣게 잊었으며, 마침내 하니가 옆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그녀는 별 속에 갇힌 것 같았다……. - P139

채리티는_자신이 가진 모은 것을 하니에게 주었다. 그러나 삶이 그에게 줄 수 있는_ 다른 선물과 비교한다면 도대체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채리티는 이런 일을 겪은 다른 젊은 여자들의 경우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갖고 있던 것은 모두_주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것 가지고는 짧은 순간밖에 살 수 없었다. - P181

핏속에 있는 무엇 때문에 저 ‘산‘이야말로 지금 그녀가 찾는 질문 속에 대한 유일한 답이며, 점점 옥죄어 오는 모든 것에서 벗어날 어쩔 수 없는 도피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곳은 비 내리는 새벽을 배경으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래 바라볼수록 지금 마침내 정말 그곳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좀 더 분명히 이해하게 되었다. - P216

마흔여덟 시간 전 마지막으로 이 풍경을 가로지르 때만 ㅎㅏ더라도 나무에는 여전히 잎사귀가 많이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지난 이틀 잠 사이에 분 강풍으로 나뭇잎들은 모두 떨어졌고, 12월의 시골 풍경처럼 정교한 윤곽을 드러냈다. 며칠 동안 가을 추위는 그녀가 독립기념일에 지나갔던 풍요로운 들판과 나른하게 보이던 숲을 모두 흔적도 없이 쓸어버렸다. 을씨년스러운 풍경과 함께 그 열정적인 시간도 시들어갔다. 채리티는_자신이 그 시간을 살았던 존재라는 사실이 더 이상 믿어지지 않았다. 불가항력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을 겪은 사람이었지만 거기에 이르는 걸음은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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