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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사람의 삶을 채우는 것은 거창한 것 이상과 꿈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일상은 '사소한 것들'로 채워져있다.
심지어 꿈과 이상을 향해 가는 길도 그렇지.
읽는 내내, 1980년대 아일랜드의 일상은 이랬구나, 참 고단하겠다, 하며
평화로운 삶이 얼마나 위태한지 절절히 알고 있는 주인공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그리고 내가 느끼는 불안감을 생각하게 되었다.
일상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일들이라는 것,
그 틈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는 건 위험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는 바,
펄롱이 내린 그 결정에 감동하면서도 다가올 어려움이 절로 느껴져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하게 된다.
'두려움이 모든 감정을 압도함'에도 불구하고 옳은 일,
원하는 곳은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그 길은, 결국
내가 선택한 그 길이 내 길이라는 뜻 아닐까.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 P22
혹독한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펄롱은.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 P24
늘 이렇지, 펄롱은.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 P29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P44
펄롱은.차를 세우고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노인은 낫으로 땅을 짚고 손잡이에 기댄 채 펄롱을 빤히 보았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 P54
잠시 멈춰서 생각이 마음대로 돌고 떠돌게 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한 해 일을 마치고 여기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게 싫지 않았다. 머리를 자르고 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눈이 쌓여 있었고 인도 위에 먼저 간 사람과 뒤따라온 사람의 발자국이 양쪽으로 뚜렷하면서도 또 그다지 뚜렷하지 않게 남아 있었다. - P111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는.것일 수도 있을까? - P120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 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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