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설계>...
내게도 만 14년만에 전화한 친구가 있었다.
결혼한다고 얘기했을 때.. 한동안 말없이 찻잔만 기울이다가 <서른까지는 기다려줄께.. 살다가 힘들면 와..>이러고는 한참을 바라보다 먼저 일어나 가버렸던 넘이었다.
내게 그 넘은 그냥 친구였지만 그에게 나는 소위 <첫사랑>이었던 것...
서른 전까지는 솔직히 많이 생각이 났었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 한구석이 든든했던 시절이었다.
신랑이 속 썩일때, 아이 때문에 힘들때.. 과연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는..ㅋㅋ
어쨌든 그 후로는 잊고 살았었다.
근데 작년 이맘때쯤 예고도 없이 그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너무 편하게... 14년이란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 편하게 대하는 나와는 반대로 녀석은 어쩔 줄을 모르는거다. 이러면 곤란한데.. 싶으면서도 싫지는 않았다.
서울과 부산이라는 거리가 나를 안심시켰을 수도 있고... 당장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테니까..ㅋ
암튼 그를 만나는 동안 나름 호사를 누렸었다. 귀했던 핸드폰도 있었고, 하얀색 에스페로도 갖고 있었기에 나름 낭만적인 데이트를 했었던 것 같다.
문득 그때 그 하얀색 에스페로가 생각나서 <혹은 그 차안에서 함께 들었던 김현식의 노래가 생각났을수도 있다> 요즘 무슨 차 타냐고 물어봤었다.
그런데!!! 그녀석 하는 말이 <나 차 바꾼지 얼마 안 됐다>라는 거다.
이거야 원 정말 엄청 무지 억수로 어이가 없어서리..
그렇다.
첫사랑은 추억일 뿐이었던 거다.
차가 뭐냐는 내 질문에 내가 자동차 세일즈 하는 줄 알았단다.
마기님의 <보험설계>라는 대목에서 그때 그녀석 생각이 자꾸 나는 건... 미련이라기 보다는 안타까움인 듯 하다.
그 질문만 하지 않았어도 내게 이쁜 추억으로 남았을 그 녀석..
전화 통화만 하지 않았어도 멋진 남자로 기억되었을 그 녀석..
안타까웠다.
그녀석 큰아들과 내 작은 딸이 2주간격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그녀석과 나는 동갑이고, 나는 스물여덟에 둘째를 낳았다는 사실..
따라서 그녀석은 서른까지 나를 기다리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거다.
아~~ 그때 통화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쁜 넘!!!
만약에.. 진짜 만약에... 그녀석이 아직 총각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난 분명 흔들렸을거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