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땅의 사계
알도 레오폴드 지음, 이상원 옮김 / 푸른숲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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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든 고전 속의 '현대'와 '지금'은 우리에게는 현대도 지금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고전이라고 할 때 그 속에 놓인 현대와 지금은 통시(通時)적 가치로서의 시간을 의미하고, 우리가 현대나 지금이라고 부르는 존재의 근거를 제공한다. 따라서 고전에 명시된 지금은 우리의 지금과 동일한 것이다. 1949년에 초판이 발행된 [모래땅의 사계]는, 오늘날 우리가 가장 주목하는 분야이기도 한 환경에 관한 최고의 고전이며, 이 책에서 저자(알도 레오폴드)가 문제삼는 지금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서의 지금이 지닌 문제로 고스란히 이행되며, 불행하게도 문제의 심도는 1949년에서 2004년의 물리적 심도(55년)만큼 깊어져 있다. 종종 환경관련서적을 읽고나면 희망보다는 절망감을 훨씬 더 많이 가지게 되는데, [모래땅의 사계]에서 알도 레오폴드가 읊어주는 숱한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문장들로부터 이토록 크나큰 절망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너무도 슬프다.

"신은 세상에 무엇인가를 주고는 다시 그것을 거두어들인다. 그러나 더 이상 신이 주고 거두어들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아니다. 우리의 먼 선조가 삽을 발명했을 때 인간도 주는 존재가 되었다. 나무를 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도끼가 발명되자 거두는 존재까지 될 수 있었다. 나무를 베어 넘어뜨릴 수 있으니까. 그러므로 나무를 심을 땅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 스스로 깨닫건 깨닫지 못하건 간에 식물의 창조와 파괴라는 신의 영역을 자기 것으로 하고 있다.

그 후에도 선조들이 다른 도구들을 많이 만들어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좀더 정교해졌을 뿐 기본적인 두 가지 도구, 곧 삽과 도끼의 보조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 우리는 사람들을 직업에 따라 분류한다.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 내다 파는 사람, 수리하는 사람, 날카롭게 벼리는 사람, 혹은 어떻게 그 도구를 사용해야 할 지 가르쳐주는 사람 등. 그런 식의 구분을 통해 우리는 도구가 잘못 사용되었을 경우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특별한 영역도 하나 있다. 철학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인간이 생각하고 또 바라기만 하면 사실 누구나 어떤 도구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또한 철학은 생각하고 바라는 바에 따라 도구를 사용하게 될 때 그것이 가치 있는지 없는지 결정하는 존재 또한 인간이라는 점도 안다."(85-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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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유 2004-11-13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마저 슬프네요 - '식물은 자살할 줄을 모른다'던 어느 한 소설가의 문장이 생각납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것처럼, 나무들, 식물들의 반란이 일어난다면 세상이 한 번쯤은 바뀔 것도 같은데요...

에레혼 2004-11-13 0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해 놓은 구절들이 님의 말씀처럼 슬프고도 아름답습니다. 인간의 분류와 철학의 역할에 관한 시각도 흥미롭구요......
가끔 올리시는 리뷰를 맛있게 천천히 음미하고 있습니다. 좋은 리뷰 고맙습니다.

[사족입니다만, 지금 제가 100번째 방문객이라고 하네요...2100]

 

 


책먹는하마 2004-11-17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본 또 한 권의 슬픔, 혹은 절망: 스콧 니어링 [그대로 갈 것인가, 되돌아 갈 것인가]

우리말로 옮겨논 제목이 좀 위협적인 듯하지만(원제:Man's search for good life)...결국 되돌아가지도 않을 거고 니어링이 얘기하는 '굳-라이프'를 찾지도 않을 거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절망적...라일락와인님의 100번째 방문에 감사와 환영을... 식물과 자살...음...산다는 것이 죽음으로 간다는 사실을 식물은 확연히 알고 있는 듯...그러니 굳이 자살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