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 - [할인행사]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랄프 파인즈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철학적 호러, 탐미적 스릴러라 불릴 만한 독특한 장르영화를 생산하는 일련의 연출가들, 가령 데이빗 린치David Lynch나 브라이언 드 팔마Brian De Palma의 계열에 속하는 데이빗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의 2002년 작품 <스파이더Spider>의 포스터에 선명한 공백으로 드러나는 퍼즐 한 조각은 영화의 내용을 응축하고 있을 뿐아니라 집착과 분열, 고독과 공포, 죄의식과 절망이라는, 인간의 운명을 구성하는 가장 가슴 아픈 조건들을 상징한다. 저 한 조각의 퍼즐이 빠져나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의 답은, 우리가 어떤 상상을 하든 그보다 더 우울하고 처절하다. 가령, 영화 속의 주인공 스파이더(랄프 파인즈Ralph Fiennes)가 자신의 친어머니를 창녀인 계모로 착각하고 살해하는 것 같이.

2007년 봄, 한국 영화계의 가장 강력한 버팀목이었던 스크린쿼터가 처참하게 무너져버린 극장가를 유린했던 '거미인간' 세번째 이야기의 포스터가 보여주는 좌우대칭의 분열 이미지는 사실, 상당히 촌스러웠다. 하기야 최첨단 그래픽과 현란한 스턴트로 중무장하긴 했지만 스토리는 여전히 20세기 중반의 만화에서 빌어오고 있는 형국이었으니 그 '고전성'은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한국의 관객들이 이 거미인간에게 열광한 이유가 '고전에의 희구'일 리는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고 화려한 그래픽과 현란한 스턴트가 관객동원의 주요인이라 하기에는 이미 너무도 화려하고 현란한 많은 영화들을 보아온 관객들이 아니었던가. 참 알 수 없는 것이 그 '취향'이라는 것일 텐데, 그래도 <스파이더맨3>에게 보여준 하루 관객 50만은 너무 과한 열기였다.

거미는 날벌레들을 포충망으로 잡아 천천히 뜯어먹고 산다. 대부분의 거미는 단독생활을 하고, 그린란드와 같은 극한지역이나 히말라야 같은 고산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적당한 크기의 벌레'들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생존이 가능하다. 거미하면 거미줄이 연상되지만 거미줄을 치는 조망성 거미와는 달리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는 배회성 거미도 있다. 늑대거미는 배회성 거미에 속하지만 그 중에는 배회하면서도 줄을 치는 것도 있고, 줄을 치면서도 돌아다니는 거미도 있으며, 남의 거미줄에 '빈대붙어' 사는 더부살이 거미도 있다. 창거미 같은 놈은 더부살이에 만족하지 않고 주인거미나 그의 새끼를 잡아먹을 정도로 잔혹한 동족살해범이다. 여러 모로 보아 인간은 거미와 비슷하다. 악착같은 생명력과 안면몰수의 동족살해까지.

<스파이더>를 통해, 유년의 고통스런 기억이 끈질기게 한 인간을 물고늘어지는 장면들을 보여준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일찍이 영상의 힘에 압도된 사회의 비극(<비디오드롬Videodrome>)과 무소불위의 권능을 갖고 싶었던 한 과학자의 참혹한 말로(<플라이The fly>)를 섬뜩한 영상에 담은 바 있다. 자동차의 충돌과 성욕의 함수를 풀어낸 <크래쉬Crash>나 인간내면에 잠재한 폭력성, 혹은 폭력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흥미롭고도 가슴 아프게 그렸던 <폭력의 역사A history of violence> 역시 영락없는 '크로넨버그표 영화'였다. 문득, 그가 만약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이런 상상은 터무니도 없고, 별 소용도 없다. 그에게 <스파이더맨>을 맡길 제작자가 있을 리 만무하고, 맡긴다 해도 십중팔구 그가 맡지 않았을 것이다.

<스파이더>의 거미인간과 <스파이더맨>시리즈의 거미인간은 똑같이 삶을 고뇌한다. 다수의 관객은 더 뻔하고 공허한, 화려하고 현란하게 과장된 거미인간의 고뇌를 선택한다. 이것이 종합예술이라는 영화에 대한 향유자들의 압도적 취향이다. 그리고 이 압도적 취향은, <스파이더>를 비치하고 있는 비디오가게를 찾는 일이 사막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는 것 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과 고가의 디비디 타이틀을 구입하기 위해 담배값을 아끼거나 지갑이 얇은 영화광들로 하여금 마냥 '곰TV'의 '무료영화 상영관'에 이 영화가 걸리기를 기다리게 한다는 것, 혹은 뛰어난 영화적 안목과 자비심을 동시에 가진 불법 업로더(!)를 기대하게 만든다는 우울한 현실에 충분하고도 적극적으로 반영된다. 그리고 그것은 수준높은 예술영화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격리시키는 데 또한 크게 일조하는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영화예술의 진전과 예술영화의 진전이 서로 다른 길이라는 사실은, 그러나, 새삼스런 일은 아닐 것이다. <스파이더>를 보면서, 그리고 보고나서, 그리 오래지 않아 이런 영화에 투자할 제작자가 완전히 사라질 거라는 암울한 상상에, 뜬금없이 가슴을 철렁 내려앉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