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희 선생님의 그리스어 원전 번역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출간을 앞두고 여러 분들께서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시어 선생님과 출판사에 큰 힘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지난주 전해드린 서문에 이어 '멜로스인들과의 대담' 일부를 맛보기로 보여드립니다. 이 부분은 본문에 나오는 40여 편의 연설문 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부분이며, 중립을 지키려는 멜로스인들을 용인하지 않는 아테나이인들의 '힘의 논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부분입니다. 물론 저항하는 멜로스인들은 이후 처참하게 정복당하지요. "인간의 본성에 따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여러분들께 의미 있는 읽을거리가 될 거라 기대합니다. 지금도 아테나이인 사절단의 말은 도처에 널려 있으니까요. 모쪼록 책이 나오는 때까지, 앞서 전해드린 서문과 이번 글이 여러분의 기대를 한껏 돋우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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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정의와 약소국의 정의는 어떻게 다른가

아테나이인 사절단 : 인간관계에서 정의란 힘이 대등할 때나 통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관철하고, 약자는 거기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쯤은 여러분도 우리 못지않게 아실 텐데요.

멜로스인 의원들 : 여러분이 정의를 도외시하고 득실에 관해서만 논의하자고 하니 하는 말인데, 우리가 보기에는 보편적인 선(善)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여러분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위기에 처한 사람은 누구나 공정한 처우를 받아야 하며, 다소 타당성이 결여된 소명에 의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원칙이 여러분에게도 이익이 될 것입니다. 귀국이 넘어졌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심하게 보복하는 것인지 당신들이 남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줄 날이 올 테니 말입니다.

아테나이인 사절단 : (1) 설령 우리 제국이 종말을 고한다 해도 우리는 나중에 일어날 일 때문에 의기소침하지 않을 것이오. 라케다이몬인들처럼 남을 지배하는 자들에게 정복당하는 것은 그다지 두려운 일이 아니오. (게다가 지금 상대하고 있는 것은 라케다이몬인들도 아니지 않소.) 두려운 것은 오히려 피지배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지배자들을 제압하는 것이오. (2) 하지만 그런 위험이라면 우리에게 맡겨두시오. 지금 우리가 원하는 바는,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우리 제국의 이익을 위해서이며,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의 도시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오.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 여러분을 우리 제국에 편입시키고 싶소. 양쪽의 이익을 위해 여러분이 살아남기를 바라오.

멜로스인 의원들 : 여러분이 우리의 주인이 되는 것이 여러분에게 이익이 되듯 우리가 여러분의 노예가 되는 것이 어떻게 우리한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아테나이인 사절단 : 여러분은 항복함으로써 무서운 재앙을 면하고, 우리는 여러분을 살육하지 않고 살려두는 것이 이익이니까요.

멜로스인 의원들 : 여러분은 우리가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적대적이 아니라 호의적인 중립 국가로 남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단 말입니까?

아테나이인 사절단 : 용인할 수 없소. 여러분의 호의가 여러분의 적대감보다 우리에게 더 위험하오. 여러분의 호의는 우리가 무력하다는 징표로, 여러분의 증오심은 우리가 강력하다는 증거로 우리 속국들에게 받아들여질 테니까요.

멜로스인 의원들 : 귀국과 전혀 무관한 우리를 대부분 여러분의 이주민이거나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된 자들과 구별 없이 다스리는 것을 여러분 속국의 백성이 공정하다고 생각할까요?

아테나이인 사절단 :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보면 서로 피장파장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겠지요. 그리고 아직 독립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이 강하기 때문이라 생각할 것이고, 우리가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있으면 우리가 두려워한다고 생각할 것이오. 우리는 여러분을 정복함으로써 제국의 영토를 확장할 뿐 아니라 제국의 안전을 확인하는 셈이 될 것이오. 우리는 해양 세력이고 여러분은 섬 주민, 그것도 다른 섬 주민보다 허약한 섬 주민이오. 따라서 여러분이 우리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오.

멜로스인 의원들 :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안전을 보장하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우리더러 정의는 말하지 말고 여러분의 이익을 위해 말하라고 하시니, 우리는 다시 무엇이 우리에게 이익인지 말하고, 그것이 여러분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것을 설득해야겠기에 하는 말입니다. 지금 중립국이 몇 나라 있는데, 그들을 모두 적국으로 만들기를 원합니까? 그들이 여기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나면 머지않아 여러분이 자신들에게도 쳐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것은 곧 여러분이 기존의 적국 수를 더 늘리고, 그럴 의도가 없던 나라들을 본의 아니게 여러분의 적국이 되게 강요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요?

아테나이인 사절단 : 우리는 사실 내륙의 국가들은 그리 두렵지 않소. 자유를 누리는 그들이 우리를 경계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오.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것은 여러분처럼 아직도 굴복하지 않은 섬 주민이나, 우리 제국의 억압에 이미 분개한 자들이오. 그런 자들이야말로 무모한 행동으로 그들 자신과 우리를 모두 명백한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가장 많은 자들이오.

멜로스인 의원들 : 그렇다면 여러분이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분의 속국들은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런 극단적인 모험을 하는데, 아직 자유를 누리는 우리가 노예가 되기 전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보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야비하고 비겁한 짓이겠지요.

아테나이인 사절단 : 잘 생각해보면 그렇지만도 않소. 여러분은 대등한 상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므로, 체면을 세운다든가 치욕을 면하는 따위의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이 살아남느냐 하는 문제이며,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여러분보다 압도적인 강자에게 저항해서는 안 되오.

멜로스인 의원들 : 하지만 때로 승패는 수의 많고 적음보다 운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리고 우리가 항복하면 우리의 희망은 모두 사라지지만, 우리가 행동하는 동안에는 우리가 바로 설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 있겠지요.

아테나이인 사절단 : 위기를 맞으면 희망이 위안이 되겠지요. 다른 재원을 충분히 갖고 희망에 기댄다면 희망 때문에 해를 입기는 해도 파멸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가진 것을 한판에 모두 거는 사람은 망한 뒤에야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요(희망은 본시 낭비벽이 심하다오). 그래서 희망이 무엇인지 알고 조심할 수 있을 때는 이미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지요. 여러분은 미약하고 백척간두에 서 있는 만큼 스스로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그 밖에도 여러분은 다급해진 자들의 흉내를 내지 마시오. 그들은 인간적인 수단으로 아직 자신을 구할 수 있는데도 눈에 보이는 희망이 사라지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이를테면 예언이나 신탁처럼 희망을 품게 하여 파멸로 인도하는 온갖 것들에 의지하지요.

멜로스인 의원들 :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우리가 귀국의 힘과 아마도 월등한 행운에 맞서 싸우기는 어렵다는 것을 물론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의에 대항해 정의의 편에 서 있는 만큼, 신들께서 우리에게도 여러분 못지않은 행운을 내려주시리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약한 힘은 라케다이몬과의 동맹이 보충해주리라 믿습니다. 다른 이유가 없다 해도 그들은 우리의 친족인 만큼 명예를 위해서라도 우리를 도울 수밖에 없겠지요. 따라서 우리의 자신감은 여러분이 생각하듯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테나이인 사절단 : (1) 신들의 호의를 말하자면, 우리도 여러분 못지않게 거기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오. 우리의 목표와 행위는 신들에 대한 인간의 믿음과 인간 상호 간의 행동 원칙에 대한 신념에 전혀 배치되지 않기 때문이오. (2) 우리가 이해하기에, 신에게는 아마도, 인간에게는 확실히, 지배할 수 있는 곳에서는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변하지 않는 법칙이오. 이 법칙은 우리가 제정한 것도 아니고, 이 법칙이 만들어지고 나서 우리가 처음으로 따르는 것도 아니오. 우리는 이 법칙을 하나의 사실로 물려받았고, 후세 사람들 사이에 영원히 존속하도록 하나의 사실로 물려줄 것이오. 우리는 이 법칙에 따라 행동할 뿐이며, 우리가 알기에 여러분이나 다른 누구도 우리와 같은 권력을 잡게 되면 우리처럼 행동할 것이오. (3) 따라서 우리가 신들에게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고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듯하오. 라케다이몬인들이 명예심에서라도 여러분을 도우러 올 것이라는 여러분의 기대에 관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여러분의 순진함에 감탄하면서도 여러분의 어리석음에 동정을 금할 수 없소. (4) 라케다이몬인들은 자신들에 관계되는 일이나 자신들의 정체(政體)에 관한 한, 아주 탁월한 사람들이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전혀 딴판이오. 한마디로 알기 쉽게 요약해 말하면, 그들은 우리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은 고상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가장 강한 편이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지금 근거 없이 구원을 기대하는 여러분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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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1-06-21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우연히 이 글을 발견하고 곧바로 예약주문했습니다. 천병희 선생님의 원전 번역본이 새로 나온다니 여간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본문의 일부만 읽어 보더라도 투키디데스의 빛나는 명문장들의 향기를 다시금 느낄 수 있군요.

'멜로스인들과의 대담' 중 아테나이인 사절단의 명문장 가운데 제게 인상깊었던 부분 하나를 덧붙여 봅니다.

* * *

멜로스의 파멸

"여러분의 결의를 보고 판단하건대, 여러분만이 미래를 눈앞의 사실보다 더 확실하게 생각하고 그 희망 때문에 미지의 것을 마치 기존의 사실로 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라케다이몬인과 천우신조와 희망을 믿고 모든 것을 건 여러분은 그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입니다."(95쪽,범우사)

인문MD 바갈라딘 2011-06-23 17:24   좋아요 0 | URL
현실의 한계에 부딪힐 때, 천우신조와 희망 말고 무엇으로 이겨내야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