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최재천, 김용택, 박원순 등등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인 열다섯 명의 서재를 살펴본 기획 <지식인의 서재>, 알라딘에서는 책 속에 갇힌 서재를 그저 바라보기만 하기에는 성에 차지 않아 직접 그들의 서재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첫 만남은 헤이리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 주인장 이안수. 가장 덜 알려졌기에 가장 궁금한 까닭에, 이분을 꼭 만나게 해달라고 출판사를 졸랐다. 자유로를 달려 도착한 모티프원은 지붕 아래 둥지를 튼 새들의 지저귐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런데 걸어나오시는 이분, 하얀 수염을 기른 모습이 <킬빌>의 파이메이 아닌가. 오랜 기자 생활로 단련된 능숙한 인터뷰 솜씨는 인터뷰어의 기를 살짝 누르며 시작하는데...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알라딘 인문MD 박태근)
[문화예술인 이안수 인터뷰]
이안수(이하 이) : MD가 무슨 뜻인가요?
박태근(이하 박) : (앗, 첫 질문도 시작하기 전에 선수를 뺐겼다.) 아, 그게 머천다이저의 약자인데, 책을 고르고 알리는 일을 합니다.
이 : 그럼 알라딘 MD는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일이네요. 책이란 알곡을 씹어 반소화시켜서 전해주는 일이잖아요.
박 : (아, 이런 칭찬으로 시작을, 분위기는 이미 넘어갔다.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오라고 하셨는데 시작부터 짐을 안겨주시네요. (웃음) 이번 책 <지식인의 서재>에는 열다섯 분의 문화인이 나오는데 사실 제 세대에서는 선생님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듯합니다. 오랜 기간 잡지기자로 일하셨고, 사진과 솟대 작업 등 예술가로서도 활동하고 계신데요. 그리고 이제는 이곳 헤이리에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을 만들어 운영하고 계십니다. 그간 삶의 여정을 소략하게 전해주신다면요.
이 : 대학을 졸업하고 30여 년을 여행하는 삶으로 지냈어요. 제가 좋아하는, 욕망하는 일을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보통의 직장 생활을 할 것인가 고민을 했는데, 결론은 전자였어요. 그래서 택한 일이 여행 기자였어요. <월간 여행>이란 잡지에서 일을 시작했죠. 물론 한국의 잡지 시장이 불안정하고 부침이 심하기 때문에 저도 그 파고 속에서 <뮤직 라이프>, <디자인 저널> 등의 잡지사에서 일을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주로 여행을 비롯해 문화 분야에서 일을 해왔죠. 전 길 위에서 지내는 걸 너무 좋아했어요. <월간 여행>에서 취재할 때는 보름 정도를 바깥에서 지내기도 했는데 간첩 신고를 받은 적도 있거든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그저 즐거움이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옮기고 나서도 늘 떠나는 삶을 이어왔죠. 한 마디로 정리하면 ‘길 위의 방랑자’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그 과정에서 제 아내가 빈 자리를 많이 채워줬죠.
박 : 경제적으로 많이 힘드셨을 듯한데요.
이 : 네, 그래서 애초에 결혼을 할 때 ‘나는 돈을 모을 자신이 없다’고 선언을 했죠. 저축을 하기 위해서 오늘을 산다면, 그건 굉장히 불안한 삶이에요. 언제든 사라져버릴 수 있거든요. 돈으로 미래를 담보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내 몸 속에 저축을 하면 그건 영속적이죠. 그래서 문화적 경험, 연극을 본다거나 책을 사서 읽는다는 건 피 속에 흔적을 남기는 거예요. 제 삶의 궤적도 이런 맥락에서 돌아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을 떠돌다 이곳에 와서 드디어 헤이리에 자리를 잡게 된 겁니다.
박 : 인터뷰를 진행하면 늘 우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데요. 오늘의 첫 번째 우문은 이렇습니다. 아주 오랜 기간 많은 곳을 둘러보셨는데, 가장 인상 깊은 곳은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이 : 정말 우문인데요. (웃음) 인터뷰를 하면 99%는 그런 질문을 해요.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든지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을 꼭 묻거든요. 저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려고 여행을 떠나지는 않았어요. 그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생각으로 내일을 추구하며 사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나를 감동시킨 ‘사람’이 있는 곳이에요. 아름다운 기억, 장소,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그런 곳 말이죠.
박 : 이곳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과 선생님께서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연이 되고자 기다리는 거 아닐까 싶네요. 지금 선생님과 제가 마주앉은 이 공간의 이름이 ‘Library 0'인데요. 숫자 0인지 알파벳 O인지 모르겠지만, 1만 권이 넘는 책이 가득한 이곳에 이런 이름을 붙인 까닭은 무엇인가요.
이 : 그렇게 크지 않은 집이지만 공간마다 이름을 붙였어요. 말씀처럼 제로로 읽어도 되고 알파벳 O로 읽어도 돼요. 무엇이든 채우는 것보다 중요한 건 비우는 거 같아요. 책을 통해 다른 누군가의 삶을 감각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나의 주관이나 껍질을 내려놓아야 하거든요. 단단한 껍질 속에 나를 가둬 두고는, 어떤 책을 읽어도 몸으로 깨달을 수 없어요. 자기를 비어 있음으로 만들어 놓지 않고서는 다른 이에게 귀 기울이기는 데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어요. 물론 독서를 스펙을 위한 공부로 생각한다면 다르겠지만 말이죠. 사람을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죠. 결국 어떤 태도로 상대를 대하고 만나느냐 하는 문제거든요. 정리하면 제로로 나를 비운 상태에서 책, 사람, 자연을 만나겠다는 결심인 거죠.
박 : 그런 깨달음 역시 책과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얻은 건가요? 아니면 오래 전부터 품고 계신 삶의 지향 같은 걸까요.
이 :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죠. 저는 창고를 만들고부터 사람에게 재앙이 닥쳤다고 생각해요. 어떤 동물도 지금 먹을 것 외에는 음식을 쌓아두고 먹지 않거든요.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도 한 번 사냥을 해서 배를 채우고 나면 곁에 얼룩말이 와서 어슬렁거려도 절대 잡아먹지 않거든요. 잡아뒀다가 다음에 먹어야지, 이런 생각을 안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의 창고는 있음에도 무한정 쌓아놓기를 원한다는 거죠. 이게 불행의 씨앗이에요. 저는 여행을 하면서 비움의 철학을 몸으로 깨달았어요. 오랜 기간 여행을 하다 보면 종이 한 장도 무겁거든요. 그래서 선수들은 지도책도 지나온 곳은 찢어서 버립니다. 말 그대로 종이 한 장도 무거운 게 우리 인생이라는 거예요.
박 : 책 제목이 <지식인의 서재>입니다. 이런 책은 대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게 마련인데요. 아마 이 책의 주인공들은 서재를 어떻게 꾸미고 나누고 채우는지 궁금해 하실 듯합니다.
이 : 아마 분류는 서재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부담으로 느낄 문제일 겁니다. 저도 애초에는 어떤 식으로든 정리를 해보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어떤 책이 필요할 때 제자리를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질서를 염두에 둔 거죠. 철학, 역사, 예술, 여행, 요리 등 큰 분류로 구상을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 서재는 저만의 공간이 아니고 가족과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모두의 공간이잖아요. 저는 책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읽을수록 부가가치가 높아진다고 봐요. 누군가의 흔적이 쌓일수록, 다음 사람은 앞선 사람의 생각을 함께 읽을 수 있는 거니까요. 예를 들어 이 곳에 여행을 온 어떤 분이 10권의 책을 골라서 읽는다고 하면, 그분이 고른 책 자체가 저에게는 또 다른 독서가 되는 거예요. 그가 고른 책으로 그 사람의 지금 생각과 고민을 읽어낼 수 있으니까요. 결국 서재를 열어두면서 책이 두 배, 세 배로 늘고, 독서가 열 배, 스무 배로 쌓이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꽂아두는 그 자리가 제자리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어떤 책을 찾을 때마다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에요. 어제 <즐거운 불편>을 찾을 때도 서재를 따라 저쪽에서 이쪽까지 여행을 하다 보니 하루가 꼬박 지났어요.
박 : 무분류의 분류라, 선생님께는 이거야말로 ‘즐거운 불편’이겠군요. (웃음)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아니시니 책을 읽는 시간은 따로 없을 듯한데요. 특별히 독서에 집중하는 때가 따로 있을까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왠지 선생님께서는 배를 깔고 누워 한 팔로 턱을 괸 채 책을 읽으실 듯한데요.
이 : 전에 누워서 읽어본 적도 있는데, 저에게는 잘 맞지 않았어요. 저는 책을 들어서 보는 게 좋더라고요. 물론 불편할 수는 있지만, 적당한 불편이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곳에는 소파가 없어요. 지금 박 선생님께서 앉아계신 자리도 그다지 편하진 않을 거예요. 여기 있는 의자는 하나같이 팔걸이가 없거든요. 물론 제가 일부러 직접 만든 거지요. (웃음) 이 의자에 앉으면 손을 둘 때가 없어서 책상 위에 둬야 하거든요. 책 읽기에 적당한 수고로움과 불편함이죠. 그래서 저는 다른 이들에게 소파와 티브이 두 가지만 없애면 된다고 아주 강력하게 말해요. 책을 대했을 때는 편하게, 나머지는 불편하게. (웃음)
박 : 제가 책을 읽다가 놀란 부분이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이 책들을 다 읽었다고 하셨습니다. 책을 읽는 것보다 사는 걸 즐기는 저로서는 차마 믿을 수가 없는 말인데요. (웃음)
이 : 모든 책을 정독했다는 말은 아닌데요. 중요한 건, 저는 책을 받으면 그 속에 담긴 내용이 궁금해서 거칠게라도 넘겨보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너무 궁금한 거예요. 받는 순간 일독을 하지 않고서는 참을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정독을 했든 속독을 했든, 혹은 두세 번 반복해서 읽었든 방치된 책은 없다는 말이지요. 게다가 책은 값을 치르고 사는 거잖아요. 저는 밥을 먹을 돈으로 책을 사거든요. 그걸 생각하면 어떻게 안 보고 내버려둘 수가 있겠어요.
박 :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책을 읽는 때는 따로 여쭤보지 않아도 되겠군요.
이 : 네, 언제든 읽는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거예요. 저는 명절 때 친지들이 모여도 책을 읽거든요. 그래서 늘 모임에서 열외지요. 이 앞집 사는 교수님하고 러시아에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이분이 열흘 정도 함께 지내면서 제가 새벽 4, 5시까지 책을 읽는 걸 보고는 ‘우리나라 교수들 반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세요. 제가 바이칼 호수에 갈 때 관련한 책을 가져갔는데, 바로 그곳에서 그 책을 읽는 데 내용이 속속들이 들어오지 않겠어요? 지금 그 책이 말하는 그 바위가 바로 여기 있는데 읽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저는 어떤 곳에 여행을 가서 며칠이 지나면 가이드처럼 다른 이들에게 설명을 하고 다닐 수가 있어요. 어딜 가나 원주민이 될 수 있어요. 오히려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외국인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웃음)
박 : 음, 질문의 수위를 조금 높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도대체 선생님께 책을 따로 모아두는 서재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이 : 네, 이 책에서 서재 이야기를 했지만 저도 사실 서재는 불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책은 계속 여행을 해야 하고, 읽은 책을 쌓아둘 필요는 없지요. 그래서 한 번은 책을 싹 비운 적도 있어요. 어느 곳이든 서재가 될 수 있거든요. 가방 속에 두세 권의 책을 넣고 다니다 펴들면 그곳이 바로 서재인 거죠. 다른 책으로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거잖아요. 늘 순환하는 서재인 셈이죠. 공간을 점령하는 서재는 반대예요. 핑계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곳에 책이 있는 이유는 글을 쓰기 위한 재료로서의 접근성 때문인 거예요, 필요에 의한. 책이야말로 여행을 해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박 : <지식인의 서재>도 서재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을 전해주기 위해 만든 책인 듯합니다. 열다섯 분의 서재를 다루는데, 선생님께서 눈여겨보신 다른 분의 서재가 있을까요? 물론 이것 또한 우문입니다, 벌써 두 번째군요. (웃음)
이 : 물론 각각의 서재는 모두 주인의 생각에 따라 모양을 갖추는 거니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거겠죠. 몇몇 서재는 이것이 서재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하거나 장식적인 효과에 치중한 건 아닐까 싶은 서재도 있어요. 그렇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각자의 개성이라 생각해요. 반갑게도 제가 꿈꾸는 서재와 비슷한 장면도 만났어요. (아마도 김용택 선생님 서재일 듯) 저는 언젠가 다시 길 위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지금 이곳도 길이지만 조금 다른 맥락에서요. 저는 이곳이 항구라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항구를 지키며 배를 맞이하는 입장이지만 언젠가는 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집 뒤에 조그마한 트레일러가 있어요. 저는 언젠가는 그게 내 집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박 :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의아했던 게, 오랜 기간 많은 글을 써오셨잖아요. 본문에서도 글쓰기야말로 책읽기의 완성이라고 말씀하셨고요. 그런데 정작 책은 안 쓰셨단 말이죠.
이 : 물론 책을 엮을 만큼의 글을 써오긴 했죠. 잡지 생활을 마친 후에는 책을 써볼까 하는 고민도 있었고요. 블로그에도 꾸준히 글을 올렸고요. 이곳 헤이리에 출판인들이 많으니 출간 제안도 많이 받았고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어요. 책이라는 게 결국 소통하기 위한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생각의 유통이라는 게 책으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내 생각은 여러 통로를 통해서 이미 누군가의 독서 행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거죠. 물론 책이라는 꼴로 정리해내는 것의 의미는 있겠죠. 그런데 나무를 자르는 죄스러움을 면할 정도의 절실함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생각이 더욱 숙성되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낼 수도 있겠죠. 요즘 책을 보면 왜 이걸 책으로 엮었을까, 어떤 생각으로 만든 걸까 의문이 가는 책도 많거든요. 내 책도 그런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을 좀더 곰삭힐 필요가 있어요. 이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서두르지는 않고 있어요.
박 : 나무에 대한 죄스러움은 크게 공감합니다. 저도 편집자로 일을 했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종이로 사라지는 숲 이야기>를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 맞아요, 저는 캐나다 최대의 제지공장 근처를 지나다가 일주일을 머문 경험이 있어요. 그곳에서 종이가 만들어지고 폐기되는 전 과정을 지켜봤거든요. 통나무가 베어져 오면 쪄서 물렁하게 만들고 큰 드럼에 넣어 갈기갈기 찢거든요. 나무의 사망을 지켜본 거죠, 그것도 처참한 사망을. 그걸 통해 얻는 게 이 종이 한 장이거든요. 나무의 시체 위에 뭘 기술해야 그 죽음이 아깝지 않을지 고민해야 해요. 모든 저자와 편집자 들은 적어도 한 차례는 나무의 죽음을 견학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박 : 네, 그 말씀 잘 새겨 기억하고 전하겠습니다. 어느새 인터뷰를 정리할 시간이 되었는데요. 알라딘 인터뷰의 마지막 공식 질문입니다. 독자 분들께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몇 가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 우선 요즘 제가 독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걸 먼저 말씀드릴게요. 요즘 저는 책을 읽는 것만이 독서인가, 하는 물음을 자꾸 던지게 되는데요. 삶의 경험이 쌓이면 자기 나름의 보편 혹은 체계가 생기잖아요. 이게 주관이고 소신일 텐데요. 이게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독서가 많은 역할을 할 텐데, 여기에서의 독서는 책뿐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책만 읽는 독서는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요. 행동으로 옮아가지 않고 지식만 습득하게 되는 경우가 그래요. 독서 행위로만 습득한 추상은 믿는 행위가 아니에요. 내 피부에 닿는 감각과 경험이 믿는 행위에요. 책을 읽는 독서뿐 아니라 사람을 읽는 대화, 자연을 읽는 소요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거죠. 이게 모두 독서라는 거예요. 한 가지 재료로 요리를 만들 수는 없는 거예요. 이런 다채로운 독서가 모여 독서 행위가 완성되는 거예요. 저도 예전에는 텍스트에 집착했어요. 만 권의 책은 읽어야겠다, 이런 목표, 아니 욕심 말이죠. 그런데 그걸 마치고 나니 자유롭고 차분해졌어요.
박 : 텍스트에서 자유로워졌는데 책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의미일까요.
이 : 네, 요즘에는 책에 담긴 글보다 그림이 더 재미있어지더군요. 또 가공되지 않은 원 데이터, 예를 들면 도감이나 사전 같은 책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자연을 곁에 두고 살다 보니 자연물에 대한 사실 자체와 실제 자연물을 감각하는 나 사이가 궁금해진 것 같아요. 자연만큼 흥미로운 독서 행위는 없는 것 같아요. 다시 질문을 돌아가서 한두 권의 책을 권한다면, 우선 <스콧 니어링 자서전>이에요. 늘 다른 이에게 선물하는 책이죠. 그리고 한 큐레이터가 기획한 <비밀엽서>를 권하고 싶어요. 사람의 다채로운 본성을 보여줘서 자기와 맞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읽는 데 부담도 없고요. 마지막으로는 <현산어보>와 <택리지>를 추천합니다. 각각 자연을 읽는 행위, 시간과 공간을 읽는 행위가 잘 구현된 책이에요. 이런 책을 통해 가르치지 않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영속 가능한 지구의 삶을 공감해볼 수 있을 겁니다.